분석

[팩트체커] 이낙연 "北, 또 다른 대접 요구할 가능성 있다"

[레이더P] 대화제의 하면서 도발하거나 현실성없는 조건 내걸기

기사입력 2018-01-03 17:11:52| 최종수정 2018-01-04 17:46:10
Q: 이낙연 국무총리가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 시무식에서 "북한은 또 다른 대접을 요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핵을 하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며 "만만치 않은 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총리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당신 책상 위에 있는 것은 위협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으스스한 이야기도 계속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총리 발언처럼 북한이 한국을 향해 유화적 제스처를 보인 직후 도발이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예상 밖의 행동을 한 적이 있나요?

이낙연 국무총리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18년 정부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이낙연 국무총리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18년 정부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A: 북한은 그동안 양면전술을 동원해 왔습니다.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회담을 제의하며 무리한 전제조건을 내걸어 한국을 당황하게 하고 결국 협상을 깨뜨리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핵실험, 미사일 도발, 테러 등으로 이른바 '뒤통수'를 치는 방식입니다.

◆비현실적 조건 달아 대화 결렬

무엇보다 북한은 '대화'와 '무리한 조건'을 함께 내거는 태도를 숱한 회담에서 보여줬습니다. 이 총리의 발언은 바로 이 부분을 경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1999년 2월 '고위급 정치회담'을 제안하면서도 남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한미군 철수, 합동 군사훈련 중지,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운동 단체와 인사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등 비현실적인 전제조건을 달았습니다. 결국 남북한 간 고위급 회담은 결렬됐습니다.

또 북한은 대민족회의, 남북정치협상회의 등 각종 회담을 제의했으나 그때마다 주한미군 철수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무산됐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 남북 대화 당시 북한은 거의 모든 남북 교류 행사에 대해 '현금'을 요구해 애를 먹었던 적이 많았다는 것이 대북 전문가들 주장입니다.

◆대화 제의 뒤 테러·포격·침투

선(先) 대화제의, 후(後) 도발도 자주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83년 발생한 미얀마 아웅산 테러를 들 수 있습니다. 북한은 그해 10월 8일 남·북·미 간 3자회의을 제안했지만 다음날인 9일 아웅산 묘소를 참배 중인 각료들을 대상으로 폭탄테러를 자행한 바 있습니다. 그날 테러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포함한 17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미얀마를 공식 방문 중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교통 체증으로 도착이 30분 늦어지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1998년 9월 공식적으로 김정일 시대가 출범한 이후 리틀앤젤스를 비롯한 남한의 공연단이 평양에서 공연을 갖고 11월에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막 시작되는 등 남북한 화합을 위한 노력이 무르익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12월 북한은 여수에 잠수정을 침투시키면서 남북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이듬해인 1999년 6월에는 '어선보호' 명목하에 서해에 침입해 남북한 함정이 교전을 벌이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2002년 6월 서해 NLL에서 벌어진 제2연평해전의 경우 한일월드컵이 열리는 기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 관계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물밑 접촉을 하는 등 관계 개선 노력을 했지만 이듬해인 2010년 3월 북한은 천안함 폭침을 일으켰고 그해 11월에는 연평도를 포격한 바 있다.

◆'어려운 생활' 강조하며 제재 완화 노리나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 이후에는 어떨까요.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1월 1일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선 "누구와도 마주 앉아 민족 문제, 통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5일 후인 1월 6일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바 있습니다.

또 지난해 5월 15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북미 간 비공식 채널인 1.5트랙(반관반민) 대화를 마친 후 귀국길에 "(미국 정부와) 여건이 되면 대화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을 두고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한 상황입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경제 봉쇄로 인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시인한 셈입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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