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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커] 文 "2005년 9·19 공동성명은 실패한 모델"

[레이더P] 성명 직후 美 제재…이듬해 北 미사일 발사

  • 김정범 기자
  • 입력 : 2018-03-09 13:42:42   수정 : 2018-04-30 16: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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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여야 5당 대표와 오찬 회동을 하고 안보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최근 남북 접촉 결과를 놓고 "2005년 9·19 선언 당시만 해도 북핵 폐기 로드맵이 있었는데 이번 합의는 북한이 불러주는 대로 써온 합의문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2005년 공동성명보다 진전된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2005년 당시 합의를 더 높게 평가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은 실패한 모델"이라면서 향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한미 간 집중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2005년 9·19 공동성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합의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었나요? 정말 실패한 모델이었나요?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 6개국 대표들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한 뒤 손을 맞잡고 축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2005년 9월 1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 6개국 대표들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한 뒤 손을 맞잡고 축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A: '2005년 9·19 공동성명'은 2005년 개최된 제4차 6자회담(7월 26일~8월 7일, 9월 13~19일까지 한국 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6개국이 참가)의 결과물입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복귀하는 등 비핵화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이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고 공격 의사가 없음을 명문화했고, 남한은 북한에 대해 200만㎾ 수준의 전력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6자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확인한 것입니다. 그해 8월에는 남북통일축구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등 남북 화해 분위기도 고조됐습니다. 당시 합의문에 나온 비핵화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반입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하고 현재 한국 영토에는 핵무기가 없음을 확인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이른 시일 내에 NPT와 IAEA의 보장 감독에 복귀할 것을 약속한다. 각국은 적당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두고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1차 6자회담 개최 이후 2년여 만에 역사적인 공동성명이 나온 것이라고 평가 받았습니다. 4차 회담에서 북·미 양국이 관계 정상화 필요성에 합의한 것은 큰 성과라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해 10월 "지난 9월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성명 채택은 그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해 오던 가장 큰 장애물을 걷어내는 의미 있는 성과였다"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해 전쟁의 위험을 항구적으로 제거해 나가겠다. 나아가 동북아시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석좌 역시 7일(현지시간) 당시 언급하면서 "향후 모든 협상에서 2005년 6자회담 공동성명의 원칙들을 재확인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유지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합의에 대해 문 대통령은 7일 '실패한 모델'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후에 북핵이 고도화됐기 때문에 앞으로 검증을 거치며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한미 간 집중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향후 대화를 통해 구체적이고 정교한 비핵화 플랜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당시 합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인 2006년 5월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하자 북한은 '9·19 공동성명' 위반이라고 반발하면서 7월에 대포동 2호를 발사했습니다. 또 그해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을 실시하자 북한은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6자회담이 중단되고 2008년 이후 북한의 핵 능력이 결과적으로 고도화됐습니다.

당시 합의가 파기된 이유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옵니다. 합의한 공동성명에 핵무기 출입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핵 훈련 목적의 미군의 접근을 막을 구체적인 근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핵무기를 탑재한 선박이나 항공기가 한반도를 드나들면서 핵공격 훈련을 할 경우 한반도 비핵화를 위협할 수 있었고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합의가 나오고 이틀이 지나 미국이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를 인출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고, 북한이 9·19 공동성명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면서 1차 핵실험이 발생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16년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결국 9·19 공동성명 파기의 원인은 미국이 제공한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BDA 제재로 인해 당시 합의가 깨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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