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예상깬 절제된 열병식…南 고려하며 美에 대화 손짓

[레이더P] 김정은 집권이후 처음으로 생중계 안해

기사입력 2018-02-09 00:08:16| 최종수정 2018-02-09 00:11:23
조선중앙TV가 8일 오후 녹화 중계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쌍안경으로 행사장 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조선중앙TV가 8일 오후 녹화 중계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쌍안경으로 행사장 쪽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을 하루 앞둔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대적인 창군절 70주년 열병식을 개최하면서도 이를 생중계하지 않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날인 7일 평창에 파견할 고위급대표단 명단을 발표하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실세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포함시킨 것에 이어 연일 대화 분위기에 힘을 싣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개막을 눈앞에 두고 이처럼 대화 지향적으로 분명하게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향후 남북대화와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구상'이 일단 탄력을 받게 됐다. 북측이 '조용한 열병식'으로 보여준 유화 제스처에 미국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면 평창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영남 북측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깜짝 접촉이 성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측은 예년에 비해 이날 열병식의 시간은 물론 규모도 축소하며 '로키(low-key)' 행보를 보였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주석 105주년 생일 때 약 2시간50분간 열병식을 진행했던 것과는 달리 이날은 1시간 이상 줄어든 1시간30~40분 정도에 그쳤다. 열병식에 동원된 병력과 주민들의 규모도 상당히 줄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다만 북한은 열병식 말미에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평가되는 '화성-14형'과 '화성-15형' 로켓도 선보여 자신들의 위협적인 핵 능력을 우회적으로 과시했다.

북한이 상당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열병식을 개최하면서 이를 생중계하지 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이번 경우를 제외하면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진행한 5차례 열병식을 모두 생중계했다. 그러나 오후 5시에 녹화중계 방식으로 일부 내용을 편집해 내보내며 국제사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행보를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침략자들이 신성한 우리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0.001㎜도 침해하거나 희롱하려 들지 못하게 하여야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조선반도(한반도) 주변에서 부산을 피우고 있는 현 정세하에서 인민군대는 고도의 격동상태를 유지하고 싸움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면서 연설 내내 군에 대한 당적 통제를 강조했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을 편집해 '핵무력' 관련 내용이 보도되지 않도록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으로 부인 리설주와 함께 열병식 주석단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검은색 중절모와 코트 차림의 김정은 위원장은 부인 리설주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와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뒤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올라 열병식을 지켜봤다. 김 위원장의 오른쪽 옆에는 황병서에 이어 군부 1인자에 오른 김정각 군 총정치국장이 자리했고 왼쪽에는 리명수 총참모장이 위치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하는 화면 뒤편에 잠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평창에 파견될 고위급대표단 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과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도 등장했다.

이같이 북측이 열병식과 관련해 로키의 대외적 행보를 보이는 것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펼쳐진 한반도 대화 국면을 다분히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 평창올림픽 개막 바로 전날 열병식을 개최하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연일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평창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미국이 탈북민·천안함과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며 대북 압박에 나서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남측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계기로 유화적 스탠스를 취하며 올림픽을 '대북 압박' 기회로 활용하려는 미국과 차별화를 기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측이 이례적으로 열병식을 생중계하지 않고 대외적 메시지 관리에 나선 모습에 주목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측이 평창 계기의 대화 국면 자체를 무시할 수 없었고 개막식 전날 열병식을 개최한다는 비난을 의식한 것 같다"며 "(열병식이) 이미 예정된 행사였지만 평창올림픽 국면에서 조심하며 상당히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펼쳤다. 홍 실장은 "북한 입장에서 상당한 성의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며 "북측으로서는 이번 열병식을 대외 메시지보다는 대내적으로만 활용하려는 측면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향후 대화 국면 진행 상황에 따라 열병식 카드를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양 부총장은 "북측은 향후 남북 관계가 순항한다면 '열병식 때 수위를 조절했다'고 이야기할 것이지만 남북, 북·미 관계가 악화된다면 열병식 장면을 재차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두원 기자/김성훈 기자/강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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