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윤근 "러시아는 北움직일 수 있는 채널"

[레이더P] 주러시아 대사

기사입력 2017-10-25 18:09:45| 최종수정 2017-10-25 19:02:14
한국 외교에서 러시아의 중요성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조명돼왔다. 미국·중국·일본과 함께 '주요 4강'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경제·안보·북핵 위기 대응 측면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 외교에 끼치는 영향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같은 기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취임 후 러시아로 특사를 보내 외교 공백을 메운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위해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러시아와의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같은 기류 속에서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이 우윤근 신임 러시아 대사의 역할이다. 마침 2018 평창동계올림픽 흥행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한국이 내년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만큼 양국 간 협력을 위한 무대가 더욱 무르익었다는 평가다. 지난 달 29일 서울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우 신임대사를 만나 러시아와의 인연,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러시아 대사 내정된 우윤근 국회 사무처장[사진=김호영기자]이미지 확대
▲ 러시아 대사 내정된 우윤근 국회 사무처장[사진=김호영기자]
"대사에 내정된 뒤 하루에 러시아어를 두 시간씩 공부하고 있는데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발음이 어렵고 글자 자체가 어렵다. 그런데 또 정치하면서 다 까먹게 된다."

러시아 대사에 내정된 뒤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 신임대사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특유의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은 듯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 사무총장 등 굵직굵직한 자리에 있으면서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을 앞세워 꼬인 정국과 각종 현안을 풀어나간 경험이 이같은 여유의 원천일 것이다.

러시아로 출국하기 전부터 러시아측 인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본격적인 업무에 대비한 우 대사는 "저는 대사가 아닌 대통령의 특사다. 다음 자리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남북 통일에 있어서 러시아가 할 역할이 있을테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러시아와의 인연을 설명해달라.

▶변호사 시절 서울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고문변호사로 6~7년 일했다. 그 인연으로 샹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런에 러시아 말이 너무 어렵더라. 사전에 한국에서 충분히 공부하고 갔지만 막상 가보니 전혀 아니더라. 학교에 "강의를 못 알아듣겠다"고 하니 통역을 쓰라고 해서, 통역을 옆에 두고 공부했다. 알아듣는 시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 그동안 꾸준히 연락해온 러시아 정·재계 관계자가 있다면.

▶'한·러 비즈니스 다이어로그'라고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시절 한국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양쪽 전문가들이 만든 모임이 있다. 한·러 다이어로그 정치분과위원장을 맡으면서 러시아 쪽 정계, 학계 관계자들과 오랫동안 만나왔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러시아 관련 모임에 늘 관심을 가졌고, 한·러 미래포럼 대표를 맡기도 했다.

- 임명 전이지만 북핵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북핵 위기 해결에 있어서 러시아가 해야 할 역할은 사실 어려운 문제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까지 참석한 6자회담도 그동안 해봤지만 각국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과거 회담을 보면 미국과 중국의 시각은 첨예하게 다르고, 러시아는 조금 떨어져있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오히려 러시아가 앞으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도 최근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 평화 통일이 서로간의 공존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보다는 조금 더 객관적인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국내에서도 사드·북핵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외교관은 특정 정파적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가 아니다. 모든 기준은 국익이고, 국가의 이득이기 때문에 항상 신중해야 한다. '자기 말'을 하는 정치인과 달리 외교관은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할 때도 있다.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고, 국내에서도 파장이 일어날 수 있는만큼 사드와 북핵 모두 신중하게 생각하고,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가며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서 이야기하겠다.

- 러시아가 한국·미국 손을 잡는게 이득이라고 설득해야하지 않을까.

▶우선 러시아는 남북한 '등거리 외교 원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러시아가 정치적으로는 북한과 역사가 더 오래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서로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상호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상호 신뢰 구축이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는데 서로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예를 든다면?

▶푸틴 정부는 연해주 극동 지방에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우리는 신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협력부터 시작해서 정치·안보·북핵 문제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에 당장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달라고 하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으니 결국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다.

- 문재인 정부와 보수정부 9년 러시아 정책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정부에서도 분명 노력을 했다. 주도권을 우리가 가져가자는 측면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나 자원외교 등 노력을 했지만 성과가 많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미관계를 더욱 공고히하되, 러시아에는 '한국과 미국이 현실적으로는 동맹관계일 수밖에 없지만 경제적 협력은 러시아와 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해시켜야 한다. 특별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와의 경제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적극적으로 실행해나가는 움직임을 추진하겠다.

- 북핵 위기 해결 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여러차례 동방경제포럼에서 이야기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북방경제위원회가 극동지방에 진출하는 정책과 예산을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또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체제를 구축하자고도 말씀하신만큼 정부에서도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중요해졌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추진하면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예상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러시아 시장은 그동안 미국·중국 시장에 비해 소홀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

▶ 아무래도 그동안 인프라가 부족했던 측면이 있다. 미국이나 중국에 비교하면 인프라 구축이 미비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 부담이 많았던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러시아 정부에서도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우리 정부도 이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국 정부가 이같은 위험 부담을 줄이는데 노력하면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 스포츠를 계기로 한국·러시아 협력이 강화되지 않을까.

▶ 이미 잘 알려져있듯이 러시아는 문화·예술의 조예가 매우 깊은 나라다. 스포츠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우리 쪽 입장에서는 행운인 것이 한국은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 러시아는 월드컵을 개최한다. 양국이 스포츠를 매개로 해서 문화예술 교류, 그리고 더 넘어서 정치적인 교류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에 한국·러시아 수교가 30주년이 되는데 이를 앞두고 내년 양국의 행사가 분수령이 될 것 같다.

- 러시아 대사는 외교관이 많이 갔는데, 이번에는 정치인 출신이다.

▶ 전문적인 외교관이 갔을 때와 정치인이 갔을 때 서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같은 경우는 일종의 '특사'같은 성격이기 때문에 다음 임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래서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 주저할 필요없이 과감하게 일할 수 있고, 우리 쪽 정부와도 가감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만 외교관 출신의 장점인 외교적으로 디테일한 부분이 저한테는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단점이 될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전문적인 외교관들의 뒷받침을 받아서 풀어나가겠다. 특히 지금은 정치적으로 타결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역할이 많다고 생각한다.

- 러시아 국민들에게 어떤 대사로 기억되고 싶나.

▶ 러시아를 깊이있게 이해하고, 러시아의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대사로 기억에 남고 싶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러시아가 진정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데 기여하고 싶다. 러시아 국민들이 '이번에 온 대사는 러시아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구나'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저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로서 정치적인 문제도 서로 의논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사실 2~3년의 기간 동안 큰 업적을 쌓기는 불가능하다. 러시아 국민들이 저를 통해 '한국 사람들도 우리를 좋아하고 있구나,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대사가 되고 싶다.

[정석환 기자 /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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