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인터뷰] 양정철 "대통령이 10을 고민하면 참모는 100을 먼저 생각해야"

[레이더P] 文의 최측근·복심 인터뷰

  • 이상훈, 강계만, 김정범 기자
  • 입력 : 2018-03-07 17:27:57   수정 : 2018-03-08 17:59:44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공유
  • 프린트
대통령 개인기에 기대어 대충 가려하면 안돼
국민이 만들어 준 정부, 신탁운영하는 것
왜 해외는 떠도나? 국내에선 견디기 힘들어
대통령 측근에 사람 꼬이면 불행한 일 생겨
총선 출마? 선출직은 제질에 안맞아
대통령이 도와달라 손내미는 일 없기를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사진=이충우기자]이미지 확대
▲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사진=이충우기자]
노무현정부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작가' 양정철(54).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복심으로 통한다. '양비'란 애칭도 있다. 작년 5월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면서 '백의종군'을 외친 뒤 외국을 떠돌며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둬 왔다. 그가 얼마 전 민주주의와 언어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펴낸 뒤 국내에 머물고 있다. 북콘서트도 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를 책 소개를 '빌미'로, 지난 5일 서울 충무로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양 전 비서관은 인터뷰 중간중간 '운명' '숙명'이란 표현을 자주 썼다. 외국을 떠도는 생활에 대해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했고,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로 묶여 불리는 것에는 '주홍글씨지만 숙명'이라고 했다.

질문이 현 정부와 정치권으로 향할 때면 "예의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국정 로드맵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며 "외교·남북 문제가 시급해 우선순위를 뒀지만 곧 경제와 일자리에서도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자리 분야의 성과가 필요하다는 점도 거론했다.

대통령 참모에 대한 질문에 "결례이고 주제 넘는 일"이라면서도 "대통령 개인기에 기대서 대충 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선 안 되고, 참모들이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고 했다. 또 남북 단일팀이나 비트코인 대책 논란 등과 관련해 "대통령이 10을 고민하면 참모는 100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면서 "안이해지면 안 된다. 우리가 정권을 잡은 게 아니다. 국민이 만들어준 정부를 신탁운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가 내 자리이고 이 권한은 내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역대 정권의 잘못을 반복하는 길로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양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상반된 시각과 관련해 "각각 증오가 아니라 역사로 존중하고 그만 놓아드리자"면서 "거기서 공존과 통합이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를 떠도는 이유를 묻자 "국내에 있으면 견디기 힘들다. 청탁, 요청이 너무 많다"면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이 꼬이면 얼마나 많은 불행한 일이 생겼는지 많이 봐오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양 전 비서관은 혹시 문 대통령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거절하기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라고 했고, 향후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출마는 일단 제 체질에 안 맞는다. 선출직에 대한 선망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파도가 지나면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는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생활 속에 민주주의 핵심이 언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전에 정치가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지막 당부라고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이런 책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양 전 비서관은 8일 서울 마포구에서 북콘서트를 연 뒤 미국으로도 건너가 북콘서트를 한다. 이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정치메시지 연구에 나선다. 이하 일문일답.





<왜 해외를 떠도는가>

-국내에 머물면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통화히거나 만날 기회 있었나.

▶ (웃음) 뭐 그런 걸 궁금하게 생각하시는가. 뵙든 안 뵙든 대통령 내외분이 제 생각과 상황을 따뜻하게 이해해 주고 있고, 걱정을 많이 해 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해 해외로 떠나기 전, 문 대통령과 만났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그 때 제가 일을 맡아서 역할(자리)을 했으면 하는 구상을 갖고 계셨다. 인사 라인업을 할 때라 어떤 역할이 좋겠는지 하는 생각은 (문 대통령이) 갖고 계셨다. 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계획이 있었고 (계획을) 한 번도 말씀 안 드린 것도 아니었다. 대선 직전에도 말씀 드렸었기 때문에 새롭게 한 결심이 아니었다. 제가 떠나있는 것이 왜 대통령, 참모에게나 국정운영에 더 나을지를 설득하는 자리였다. 대통령께서도 제 생각을 아셔서 충분히 수긍하셨다.

-여전히 왜 해외를 떠도는가.

▶국내에 있으면 견디기 힘들다. 청탁, 요청이 너무 많다. 지방선거 앞두고 정치적으로도 가만 두지를 않는다. 그런 게 싫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대통령에게 누가 안 되려면 지방선거까지는 싫든 좋든 해외에 있을 수밖에 없다. 유랑생활이 고달프지만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다시 오랫동안 나가는 게 끔찍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스스로 '끈 떨어진 놈'이라고 표현하지만 북콘서트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외국 유랑만 하다가 유일한 활동으로 책을 냈다고 하니까 짠한 마음에서 보내주는 격려 아니겠는가. (끈 떨어졌다는) 그런 얘기를 자꾸 반복하는 이유가 있다. '저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거나 어떤 부탁을 하려는 분들이 부디 헛된 꿈을 갖지 말아 달라'는 내 나름의 거리두기이자 독한 시그널이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이 꼬이면 얼마나 많은 불행한 일이 생겼는지 우리가 많이 봐 오지 않았는가.

-외국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었나

▶(고개를 끄덕이며) 문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부탁하는 분도 있고 장차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분도 있었다. 물론 제가 정처 없이 떠도니깐 밥이라도 사주는 분이 더 많았다.

-서울에 머물 때 누구를 만나나

▶ 지난 대선에서 챙겨주신 분들이 있다. 그 많은 분들에게 대부분 제가 도움을 청했기에, 인간적으로 그 분들을 서운하지 않게 하는 게 큰 일이다. 물론 개인적인 시간도 갖는다. 오해가 생길까봐 장관이나 의원들은 잘 안 보려고 한다. 청와대서 일하는 후배들과는 식사도 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는 어떻게 되나. 자유아닌가

▶식구들도 있고, 벌써 1년 가까이 떠돈 게 힘들고 경제적으로 부담이다. 솔직히 떠나기는 싫지만 안 떠날 수는 없다. 지방선거는 미묘한 시점이라서 그렇고 지방선거 이후는 청와대든 내각이든 변화가 있으면 그때도 엮이기 싫다. 큰 파도 지나면 시골에서 지내고 싶다.



<문재인과 양정철>

-'문재인'이란 인물은 '양정철'에게 어떤 의미

▶문 대통령은 내게 오랜 시간 동안 정권교체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제는 새 정치에 대한 희망이다. 한편으로는 세월을 함께 하며 여기까지 왔기에 눈물나게 애틋한 정치적 은인이다. 내가 빚이 많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4년여간 많은 준비를 했는데

▶솔직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집권할 준비만 했지 국정운영을 성공시킬 준비까지는 부족했다. 2012년 대선 패배와 민주정부 10년을 복기하면서, 대선 승리도 중요했지만 국정운영 성공을 위한 준비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했다. 참모들도 그랬지만 문 대통령 스스로 그 준비와 공부와 구상을 가장 많이 했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한 정부가 1년 가까이 시행착오 없이 안정적으로 가는 비결이 그것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 주요 개혁과제와 국정운영 우선 순위, 임기 중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한 로드맵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외교안보 및 남북관계가 특히 시급하기에 지금까지 그쪽에 우선순위를 뒀지만, 곧 경제와 일자리에서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본다.

-문 대통령과 2016년 히말라야 트래킹을 같이 했는데.

▶트래킹을 (문 대통령) 내외분과 두 번 간 경험이 있다. 한 번은 뉴질랜드였다. 그 때는 2012년 대선 패배의 후유증이 컸는데, 일종의 힐링투어였다. 네팔·부탄은 대선을 앞두고 다시는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없을 것으로 봐서 권고했다. 개인적으로는 네팔·부탄 트래킹을 하면서 이번에는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트래킹을 하는 과정에 돌아본 지역들이 대부분 굉장히 유서깊은 곳이었다. 불교 사찰이 많은 지역이었다. 가는 곳마다 내외분이 절박하게,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리시더라. 저렇게 간절한 마음을 갖고 하시면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기를 그때 보았다.



<대통령과 참모>

- 만약 지금 청와대 참모라면 어떤 건의를 했을까.

▶이런 질문이 굉장히 곤란하다. 결례이고 주제넘게 가르치려는 인상을 주면 안되니깐 경계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를 평가한다면.

▶평가할 입장도 아니고 또 (내 평가가) 객관적일 수도 없다. 다만 대통령 개인기에 기대서 대충 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선 안 된다. 청와대와 내각의 참모들이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

-초심을 잃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청와대 전 참모진을 통틀어서 청와대를 가장 잘 아는 분이 문 대통령이다. 큰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참모진들이 훨씬 많이 준비하지 않으면 대통령을 보좌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잘 하니 '대충 보필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안일해지게 된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업자 입장에서 청와대를 경험했다. 참모들이 엄청나게 노력하고, 분발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문 대통령을 못 따라간다.

-지금 참모들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안도하는 것 중 하나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다 되가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파워게임이나 권력투쟁 같은 갈등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잠복해 있는 위기 요소는.

▶안이해지면 안 된다. 우리가 정권을 잡은 게 아니다. 국민이 눈물로 만들어 준 정부를 신탁 운영하는 것이다. 이 자리가 내 자리이고 이 권한은 내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역대 정권의 잘못을 반복하는 길로 빠질 수 있다. 그 이상 얘기하는 건 결례인 것 같다.

-참여정부 시절에 대한 반성이 도움이 됐다는 것인가.

▶문 대통령 스스로 복기를 많이 했고 그런 것들이 누적돼서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참모들이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면 참모들이 잘 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프게 집권하고 힘들게 국정을 운영하면서 쌓였던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자양분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겸허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현안>

-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에서 여러 호소가 있는데.

▶ 세부 정책 사안이나 국정 현안에 대해 언급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남북단일팀 구성 등에서 2030세대가 화를 냈다.

▶국민 정서를 이전의 기준으로 생각해서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했다. 남북문제를 안보·평화·민족의 관점에서 생각했을 뿐, 요즘 젊은이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의 가치를 보지 못해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10을 고민하면 참모들은 100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참모들이 깊이 따져보고 분발해야 하는 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적폐청산 배경 중에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나쁜 시각이고 불순한 프레임이다. 적폐 수사를 마치 정치보복인 것처럼 연결하는 생각은 옳지 않다. 불법 부패 부정에 대한 사법정의 문제다. 그걸 정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면 안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역사적 인물로 놓아줄 때가 됐다고 했는데.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박정희를 각각 증오할것이 아니라 지나간 우리 역사로 존중하고 그만 놓아드리자는 얘기다. 거기서 공존과 통합이 시작될 수 있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는 과대로 극복해야 미래로 갈 수 있다.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사진=이충우기자]이미지 확대
▲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사진=이충우기자]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차별적이고 무례한 용어, 호칭 등을 지적했다. 이런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일을 의무로 느끼게 된 계기는.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이 대단히 높아졌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완성이 없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나 시스템만의 완성이 아니다. 배려, 공존, 존중 , 평등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가 일상의 삶, 사람과 사람, 사회적 관계성 속에서 뿌리를 내려야 성숙한 민주주의로 완성돼 나간다. 그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언어다. 언어에 담긴 우리 의식과 문화를 좀 더 민주주의적 가치로 채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전에, 정치가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것을 마지막 당부라고 생각하고, 오래 전부터 이런 책을 쓰고 싶었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언어 스타일을 규정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워낙 현실정치를 오래 한 분이라 민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서 국민들이 어떤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지를 동물적으로 알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오랜 군부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이 끝나고 첫 문민대통령으로서 거침없는 개혁과 메시지를 직설하셨기 때문에 대통령의 언어를 민주적 측면에서 한 단계 도약 시키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정치적 시련을 겪었고 그걸 이겨내 대통령이 된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굉장히 절제되고 가장 규범적인 지도자의 언어를 쓰신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타일이나 기질이 그렇듯이 어떤 사안에 대해 국민에게 덮거나 숨기지 않고 본질을 그대로 직시해서 드러낸다. 국민들의 공론과 여론에 묻는 정면돌파형 언어메시지였다. 그러다 보니 논란도 야기하고 정치권의 저항에도 직면했지만 몇몇 언어학자들은 그런 모습이 언어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중하고 절제된 성격을 갖고 있고, 헌정사의 특별한 시련을 겪고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국민들과 소통을 통한 공감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다. 소통을 통한 공감의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4명의 대통령은 저마다 고유의 민주주의적 언어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떤가.

▶ 다른 네분과 차이를 좀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소통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혹은 정치권이나 기자들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동떨어진 언어 메시지를 구사한다. 거기서 괴리가 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투쟁의 언어, 자본의 언어, 권력의 언어를 경험했고 공감의 언어, 소통의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책에 썼다. 본인의 언어에는 변화가 있었나.

▶두 번의 터닝 포인트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한 번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심각한 염세, 비관, 허무 같은 게 왔다. 이것저것 내려놓으니 분노나 열망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비워졌다.

또 한번은 2012년 (대선에서) 뼈아프게 지고 나서 문 대통령과 가까운 참모들이 비장하게 각오한 것이 있는데, 졌으면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대선에서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보여야 할 애티튜드(태도)가 있다. 우리나라에 태도보수라는 말이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싫어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태도, 이미지, 메시지에 대해 민감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포용성, 우리가 빠질 수 있는 도그마 다 바꿔야 한다고 절박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대선 때 여러 가지 공약, 입장을 보면 중도확장으로 많이 갔다. 문 대통령이 당대표 되고 나서 총선 때 인재를 영입한 것부터 경선과 대선 때 탕평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은 오히려 뒤로 빠졌다.

지금은 (과거를) 돌아보고 극복할 만큼의 여유도 가져야 하고 시간도 지나 다들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제가 50대 중반인데 30대 후반에 비서관을 했다. 혈기방자했다. 이후 나이가 들어서 철이 든 것도 있고 두 번의 큰 전환점을 맞으면서 (자신을) 돌아봤다. 저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사람들의 성찰과 복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분노만 가지고는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없지 않나.



<앞으로 계획>

-앞으로도 계속 해외에 머물 것인가.

▶지금은 더 나가있어야 하는 이유가 절박할 수밖에 없는 게, 지방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기다. 밖에서 근신, 절제하고 거리를 둬야 하는데, 당내 경선에 끼어드는 모습이 될까 두렵다. 부산 북콘서트를 취소한 것도 그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책 한번 냈다고 요란 떠는 것이 다른 분들이 보기에 불편할까 해서 조심스럽다. 출판사는 조금 서운할 것이다.

- 위기가 닥쳤을 때, 문 대통령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거절하기 어려운 게 현실 아닌가.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지금의 자유가 좋다.

- 2020년 총선에서 역할은.

▶출마는 일단 제 체질에 안 맞다. 출마를 하게되면 지역을 정해서 나가게 되는데, 문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는 게 싫다.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선거 준비한 사람이 저로 인해 피해보는 것도 싫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에 대한 선망이 별로 없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절제하지 않으면 사람이 꼬이고, 부탁과 청탁과 민원이 얽히기 시작하면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3철이란 표현은 자부심인가, 부담인가.

▶주홍글씨다. 3철이라는 말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민정, 국정상황실, 홍보 등 3각 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필하던 핵심맴버라고 해서 청와대 안에서 쓰던 애칭이었다. 어느 날 이게 권력을 내놓은 야인이자 야당정치인임에도 따라붙는 하나의 프레임이 됐다. 주홍글씨지만 어떻게든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생에는 꼭 이름을 바꾸고 싶다.(웃음)

-롤모델이나 좌우명이 있나.

▶롤모델은 없고, 참모 코드로서 장세동 같은 분을 인정한다. 무한충성과 무한희생이 참모의 덕목이다. 내용과 상관없이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모셨던 참모들에게 실망을 했다. 한 사람의 대통령을 모시면서 당선되도록 애쓰고, 국정운영에 성공하고, 퇴임 이후에도 그 분이 아름답게 남도록 하려면 참모들이 적어도 그 정도의 헌신과 희생으로 지킬 각오가 있어야 한다. 출세나 자리때문에 대통령을 모시면 안 된다.

-앞으로 계획은.

▶ 내주 미국으로 가서 뉴욕 등 네 곳에서 북콘서트를 한다. 행사를 마치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에 적을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공부도 할 생각이다.

-8일 북콘서트에 박지원 의원이 참석한다고 해서 관심인데.

▶이번 북콘서트의 주제가 '대통령의 글쟁이들'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글쟁이들이 모인다. 그러니 출판사 쪽에서 각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모시면 좋겠다고 했다. 임종석 실장은 이미 북콘서트에 다녀가셨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박 의원과 인연도 있고 해서 제가 연락을 드려 참석을 요청했다.

[이상훈 기자/강계만 기자/김정범 기자/사진=이충우 기자]

기사의 저작권은 '레이더P'에 있습니다.
지면 혹은 방송을 통한 인용 보도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정치실록

정치실록 2018년 6월 19일 Play Audio

전체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