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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쇼] 우리 정치사에 기록된 쿠데타·반란·계엄계획

[레이더P] 군부·보안사 등

  • 김정범 기자
  • 입력 : 2018-07-13 14:19:19   수정 : 2018-07-16 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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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위수령·계엄 관련 문건을 작성한 것에 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979년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12·12군사반란과 닮은꼴이라고 날을 세웠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문건의 어느 부분에도 실제 위수령 또는 계엄령을 통한 쿠데타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정치사에 기록된 군의 쿠데타·반란·계엄계획 등을 알아본다.

1. 박정희·육사8기…5·16군사정변

1961년06월22일 박정희 육군소장이 5.16군사정변 공수부대 철수식에 참석한 모습[사진=국가기록원]이미지 확대
▲ 1961년06월22일 박정희 육군소장이 5.16군사정변 공수부대 철수식에 참석한 모습[사진=국가기록원]
5·16군사정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도로 육사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이던 소장 박정희와 8기생 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김종필 전 국무총리 역시 5·16군사정변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해 권력을 장악하면서 군사혁명의 성공과 6개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변의 주역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 직후에는 사회가 안정되면 다시 군대로 복귀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963년 민주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고 야당의 윤보선 후보를 15만표 차로 제치고 재당선되면서 제3공화국이 시작됐다.

2. 전두환·신군부…12·12군사반란

12.12사태 모습[사진=국가기록원]이미지 확대
▲ 12.12사태 모습[사진=국가기록원]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당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등 군 장성들을 체포하는 하극상이 벌어진 날이 12월 12일이었다. 날짜를 따서 12·12군사반란 또는 12·12사태로 불린다. 당시 보안사령부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서울 한남동 육군 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며 제압한 후 주요 인사들을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 총장 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신군부 세력은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을 체포해 그를 통해 대통령이 총장 연행을 재가하게 설득했다. 결국 13일 새벽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재가했고 이후 신군부 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 사건의 주도 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태는 집권 세력에 의해 정당화됐지만 그 후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3. 불발된 계엄…'청명계획'
기무사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1989년 청명계획이라는 것을 준비한 바 있다. 청명계획은 당시 노태우정부를 위한 친위 쿠데타의 구상으로 알려졌다. 반정부 인사 목록을 만들어 사찰하고 계엄이 선포되면 이들을 검거하는 작전을 말한다. 예비검속 A급 대상에는 당시 노무현 의원과 이해찬 의원 등이 있었고 B급에는 박원순 변호사, C급에는 김수환 추기경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1990년 10월 양심선언을 통해 내용이 알려졌다. 여론의 거센 비판이 일자 보안사는 이름을 기무사로 바꾸고 민간인을 사찰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내놓기에 이른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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