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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급신설 논란 속 국회 인턴들의 외침 "노동법 없는 것처럼 일한다"

[레이더P] 국회 카스트 최하층 `인턴`

  • 조선희 기자
  • 입력 : 2017-11-23 14:16:36   수정 : 2017-11-24 10: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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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급 신설은 인턴의 정규직화 기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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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약정처럼 2년마다 갈아 치워지는 걱정 안 하게 해주세요."
"열심히 하면 승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세요."


국회 종사자들의 익명 커뮤니티 '여의도 옆 대나무 숲'에 올라온 어느 국회의원실 인턴의 글이다. 국회 인턴제는 1999년 의정 활동 지원과 청년실업의 일시적 해소를 위해 시행됐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사실상 보좌진의 업무를 하고 있으나 처우가 열악하다는 점 등이 계속해서 지적돼왔다.

이에 지난 17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각 의원실마다 2명씩 근무하는 인턴비서를 1명으로 줄이고 대신 8급 상당의 별정직 공무원 비서 1명을 증원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의결했다. 인턴 한 명이 8급으로 채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나 단순히 보면 보좌관이 7명에서 8명으로 느는 셈. 비판적 시각이 강했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도 없으면서 비서는 왜 늘리나" "국고 손실시킬 돈으로 복지나 신경써라" 등이 말이 나왔다.

하지만 당사자인 인턴들은 다른 설명을 한다. 8급 신설에 대한 생각과 인턴 생활에 대해 현재 인턴으로 재직 중인 A씨 B씨, 그리고 국회의원실 인턴 경험이 있는 C씨에게 들어봤다. 모두 현재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한 경험이 있다.



국회 카스트, 인턴이 '최하층민'

-8급 신설에 대한 인턴들의 반응은.

▷A씨=아직 좋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8급 신설 논의는 인턴제 때문에 시작됐는데 인턴인 우리에게 그 자리가 올지 안 올지 모르니까. 또 2명 중 1명만 되는 거라 나머지 1은 11개월 일하고 나가야 한다. 국회 안에는 보좌진이 아니면 모를 카스트 제도가 있다. 의원 밑으로 급수(4·5·6·7·9급)가 정해져 있고 급수를 못 단 인턴들이 최하층민이다.

▷B씨=체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8급으로 승진한다고 해도 고용 불안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인턴으로서 느끼는 불안과 급수가 있는 보좌진으로서 느끼는 불안은 천지 차이다. 인턴이라는 특수한 고용 불안 상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한데, 급수를 달면 적어도 지금보단 훨씬 나아질 거라고 본다.

▷C씨=아예 나가야 했던 인턴들에겐 일할 자리가 생긴 거니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인턴이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인턴 둘 중에 1명이라도 성장해서 승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거니.

-8급을 놓고 인턴 간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B씨=행정비서, 인턴, 지역인력들 모두 기대하고 있을 텐데. 서로 감정싸움만 하다 정작 자리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는 경우도 꽤 많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C씨=이 경쟁을 한다고 해서 피로함은 없다. 이미 의원실 자체가 항상 경쟁 상황이다.



쪼개기 계약의 현실

-현재 인턴제도의 문제는.

▷A씨=11개월 쪼개기 계약을 해오면서 이 제도가 유지된다는 게 문제다. 원래 2년 이상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넘어간다. 근데 그렇게 못하게 하려고 11개월 쪼개기 계약을 하고 있다. 인턴들은 11개월 30일까지 일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머지 한 달은 의원실 경비로 월급을 받으며 일한다. 그리곤 또 11개월짜리 계약을 한다.

▷B씨=8급이 생겼다고 반드시 인턴을 써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우리는 안다. 우리의 처우 개선을 위해 8급을 만들었지만 그게 인턴을 위해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의원실은 내부 승진이 정말 어려운 문화 같은 게 있다. 예를 들어 7급 자리가 났다고 해서 인턴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7급에 새로운 인물을 뽑는다. 한번 인턴은 영원한 인턴이다.

-인턴으로 일하는데 어려운 점은.

▷A씨=알면서도 다들 감내하는 거라(웃음). 하나 예를 들자면 대선 기간에 인턴은 선거사무원으로 등록이 안 된다. 현장에서 제일 고생하는 건 인턴 친구들인데 수당 이런 것을 당연히 못 받는다.

▷B씨=개인적으로 어디 가서 인턴 직함을 얘기하지 못하는 게 제일 힘들다. 일이나 노동 강도, 업무 기간 등 따져보면 일반적인 인턴이 아니다.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의원을 대신하는 사람들이라 업무상 스스로를 낮춰선 안 된다. 실무 당정협의 할 때나 부처 업무보고 받을 때 대신 참석하기도 하는데 인턴이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굴욕이지만 어쩔 수 없다.

▷C씨=능력이 돼도 운과 타이밍이 따라주지 않으면 승진의 기회가 적다. 인턴 생활 2년을 채워가는 중인데 하루하루 벼랑 끝으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벼랑 끝에서 기적적으로 사다리가 내려올까, 아니면 난 그냥 벼랑 끝으로 떨어져 버리는 걸까 이런 기분이 든다.



노동법이 없는 것처럼 일한다

-열악한 근무 환경은 모든 인턴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A씨=아마 대부분의 의원실에서 인턴들이 가장 일찍 오고 가장 늦게 퇴근할 거다. 하지만 야근 수당 같은 건 없다.

▷C씨=내가 일한 만큼 벌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야근수당, 휴일근무수당 등 아무것도 없다. 노동법이 없는 것처럼 일한다.

-국회 운영위원회의 여당 의원들은 국회 인턴들의 상황에 대해 관심이 없나.

▷A씨=야당일 때는 국회 사무처 청소노동자분들 처우개선 한다고 엄청 노력했다. 근데 막상 여당이 되고 나니 '인턴' 문제에 대해선 다들 총대를 안 메려는 분위기다.

▷B씨=여당 인턴 카톡방에서 운영위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해 받았는데 배신감이 들더라.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비정규직 문제 외치던 여당 맞는지 다들 분개했다. 인턴 가지고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고 몸을 사리면서 3급 보좌관 신설과 연구원 창설에는 적극적이라니 이율배반적이다. 의원들이 인턴의 존재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8급 신설 논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골자

-8급 신설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A씨=바깥에서 너무 안 좋게만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좌진 중에서 제일 약자인 인턴직이 국회에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다. 항상 국정감사 때 보면 다른 피감기관들 비정규직 문제로 지적하지 않나. 근데 정작 본인 의원실에 이렇게 인턴들이 쪼개기 계약을 당하는 사실은 다들 모른체 하고 있다. 이게 참 허탈하고 서글프다.

▷B씨=인턴 줄이고 보좌진 늘린다? 아니다. 보좌진 내에 있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건데 기사 제목이 그렇게 뽑혔다. 마치 7명에서 8명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도가 되고 있는데 사실상 9명 그대로인 거다.

▷C씨=저도 국회 들어오기 전까진 국회의원이 다 노는 줄 알았다. 근데 정말 바쁘다. 지역구 행사, 민원 처리, 입법, 홍보까지. 물론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게 보좌진에 대한 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8급 신설이 보좌진을 늘려준 게 아니라 인턴들의 처우를 위해 정규직화해준 거로 봐야 한다. 직급을 다는 건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다. 8급이 신설되지 않으면 2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일한 인턴들은 한순간에 직업을 잃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특혜나 특권이 아니라 정규직에 대한 희망을 높이는 과정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조선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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