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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쇼] 다시 ‘살짝` 열린 금강산 가는 길…1989~2018

[레이더P] 금강산 관광 중단 10년, 변화 오나

기사입력 2018-01-24 14:58:14| 최종수정 2018-01-25 17:17:05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금강산으로 가는 동해선 육로길이 다시 열렸다. 금강산과 마식령 스키장을 사전 점검할 남한 선발대 12명은 23일 오전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금강산으로 향했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2015년 10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후 2년3개월 만에 동해선 육로길을 연 것이다. 특히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꼭 10년째이기도 한 만큼 의미가 있다. 다사다난했던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육로·해로)의 변천사를 들여다봤다.



1. 1989년부터 시작된 방문 노력

98년 소떼를 몰고 방북에 나선 정주영 전 명예회장.[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98년 소떼를 몰고 방북에 나선 정주영 전 명예회장.[사진=매경DB]
금강산 관광은 1989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방북해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한 것이 그 기반이 됐다. 정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다른 기업들도 북한과의 협력을 확대했다. 1992년 대우그룹이 평안남도에 남포공단 건설을 협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후속조처를 위한 방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논의는 지지부진해졌지만 9년이 흐른 1998년 6월 정 명예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1001마리의 소떼를 북한에 보내면서 '금강산 관광'이 급물살을 탔다. 남북 분단 이후 민간 기업인이 첫 교류의 물꼬를 튼 셈이다.



2. 1998년 반세기 만에 열린 해상길

98년 11월 18일 첫 금강산 관광객을 태운 금강호가 동해항을 떠나고 있다. [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98년 11월 18일 첫 금강산 관광객을 태운 금강호가 동해항을 떠나고 있다. [사진=매경DB]
금강산 길은 육로보다 해로가 먼저 열렸다. 1998년 11월 18일 강원도 동해국제여객터미널에서 관광객과 승무원 1000여 명을 태운 2만8000t급 금강산 크루즈 여객선 '현대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다. 그해 10월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한 직후였다. 경협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은 금강산 특구 지정과 이를 위한 SOC사업권자로 나섰고 특구 내 호텔과 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 시설을 직접 구축했다.

금강호의 출항으로 남북 분단 이후 반세기 만에 관광객들이 처음 북한을 방문하게 됐으며 남북 간 대규모 인적 교류를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으로 해로를 연 현대금강호는 4박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장전항을 떠나 동해국제여객터미널로 돌아왔다.



3. 2003년 해로에 이어 육로도 열려

2003년 2월 14일 금강산 육로관광 시범단 400여 명을 태운 버스가 북방한계선을 통과해 북측 지역에 도착하자 북한 취주악단이 환영하고 있다.[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2003년 2월 14일 금강산 육로관광 시범단 400여 명을 태운 버스가 북방한계선을 통과해 북측 지역에 도착하자 북한 취주악단이 환영하고 있다.[사진=매경DB]
2002년 11월 금강산 특구법이 채택되면서 육로 관광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후 2003년 9월 동해선 육로길을 통한 관광도 가능해졌다. 금강산 크루즈가 첫 운항을 한 이후 약 5년 만이었다.

2004년 7월 금강산호텔 등 숙소가 확충되면서 1박2일 및 당일여행 등 다양한 일정도 가능해졌다. 뱃길에 이어 육로가 열리면서 2003년 7만여 명에 머물렀던 관광객은 2004년 27만2000여 명으로 증가했고 각종 관광사업이 생겨났다. 그해 11월 금강산골프장을 착공했다. 당시 7번국도로 불리는 비포장 도로를 통해서 금강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 7번국도는 금강산에서 마식령 스키장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로 탈바꿈한 것으로 전해진다.



4. 2005년 관광객 100만명 돌파

2003년 5월 23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대학생 상봉모임 개막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북측 대학생들과 남측 대학생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2003년 5월 23일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대학생 상봉모임 개막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북측 대학생들과 남측 대학생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매경DB]
금강산 관광은 시행 7년 만인 2005년 6월 방문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06년에는 금강산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인 고성 화진포아산휴게소가 영업을 시작했고 같은 해 외금강호텔도 문을 열어 더 많은 관광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금강산 관광이 정점을 찍으면서 2007년 들어서는 200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해로·육로를 통해서 남북을 오갔다. 금강산은 민간인 관광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장관급 회담 등이 금강산 관광특구에서 열리며 남북 교류의 장으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일시적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흐를 때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됐다. 2007년 5월 내금강 관광이 시작됐고 2008년부터는 자가용을 이용해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남북 간 교류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었다.



5. 2008년 피격사건…올스톱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잠정중단된 가운데 승용차를 이용해 마지막으로 관광에 나섰던 관광객들이 2008년 7월 13일 오후 동해선 육로를 통해 돌아오고 있다.[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잠정중단된 가운데 승용차를 이용해 마지막으로 관광에 나섰던 관광객들이 2008년 7월 13일 오후 동해선 육로를 통해 돌아오고 있다.[사진=매경DB]
금강산관광 잠정중단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아산휴게소 내 식당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화진포아산휴게소는 금강산 관광객들이 출발전 집결해 관광증 등을 교부받는 곳이다.[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금강산관광 잠정중단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아산휴게소 내 식당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화진포아산휴게소는 금강산 관광객들이 출발전 집결해 관광증 등을 교부받는 곳이다.[사진=매경DB]
2008년 7월 북한군의 피격으로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고 남북 관계도 급격히 얼어붙게 됐다. 이후 이산가종 상봉 문제 협의를 제외하면 사실상 왕래가 끊긴 것이다.

이후 현대 측과 정부는 북한군이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조준사격했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모두 불허하며 금강산 관광은 전면 중단하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해왔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음은 물론 이명박 정부는 이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 중단에 이어 개성 관광까지 중단시켰고 이후 남북 관계는 급랭됐다. 현대아산은 이 사태로 인해 1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고 금강산 관광 길목에 조성된 상권이 죽고 인프라 시설들 역시 관리가 안돼 큰 타격을 입었다.



6. 2010년 北 자산 몰수·추방

금강산 관광 중단이 지속되고 재개 협상도 잇따라 결렬됐다. 남북은 2010년 2월 당국 실무회담을 열어 재개를 타진했으나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북한은 급기야 2010년 4월 금강산 관광단지 내 시설 자산 동결 및 몰수 조치를 내렸다. 당시 북한은 남측 재산을 동결·몰수했음은 물론 관리 인원들까지 추방했다.

금강산 업체관계자들이 북측의 부동산 동결조치에 입회하기 위해 2010년 4월 27일 오전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방북하고 있다.[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금강산 업체관계자들이 북측의 부동산 동결조치에 입회하기 위해 2010년 4월 27일 오전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방북하고 있다.[사진=매경DB]
이후 북한은 해외 관광객 유치를 추진했고 2011년엔 4월에는 기존 특구 법령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령을 제정해 '금강산국제관광특별구'로 재지정했다. 당시 북한은 "관광 중단으로 손해가 막심하다"며 "금강산 지구 내 남측 민간 자산을 동결하고 정부 자산을 몰수한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정부 소유의 이산가족면회소와 소방서를 비롯해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문화회관, 온정각 동관 면세점, 온천장 등을 몰수했다.



7. 2015년 이산가족 상봉

제20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15년 10월 20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남쪽 가족들이 방문준비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해 출발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제20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15년 10월 20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남쪽 가족들이 방문준비를 마치고 차량에 탑승해 출발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매경DB]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15년 10월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됐다. 강원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것이다. 1차 만남 때는 북측 방문단 97명이 남측 가족을 만나고, 2차에는 우리 측 방문단 90명이 북측 가족과 상봉했다. 2015년 8월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양측이 합의했을 때만 해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순조롭게 개최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다시 난항에 빠졌다. 하지만 이후 대규모 열병식에서는 우려했던 신무기나 무력 도발을 자제하면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8. 2018년 다시 금강산으로

기존의 대북 강경 기조가 지속되면서 최근 10년 동안 금강산 관광사업은 전혀 진척이 없었다. 앞서 정부는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하지만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선수단 파견을 결정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후 지난 23일 남북의 금강산 합동 문화행사와 마식령스키장에서의 스키선수 공동훈련 현장을 사전 점검할 우리 측 선발대가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으로 향한 것이다.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단장으로 한 금강산 지역 남북 합동문화행사와 마식령 스키장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 점검 남측 선발대가 23일 오전 동해선 육로를 통해 금강산 지역으로 방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사진=한주형기자]이미지 확대
▲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을 단장으로 한 금강산 지역 남북 합동문화행사와 마식령 스키장 남북 스키선수 공동훈련 점검 남측 선발대가 23일 오전 동해선 육로를 통해 금강산 지역으로 방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 동해선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해 이동하고 있다.[사진=한주형기자]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 일행이 1박2일 방남을 마치고 돌아간 다음날 남측 선발대의 방북 일정이 이어진 것이다. 한국 측 당국자가 판문점을 벗어나 북한을 찾는 것은 2016년 2월 개성공단 중단 이후 처음이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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