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인터뷰] 박지원 "朴탄핵에 김무성이 금메달, 내가 은메달"

[레이더P] 당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기사입력 2017-11-16 14:56:39| 최종수정 2017-11-29 16:15:12
세월호 내용, 민주당 초안엔 없고 국민의당案에만 포함,
그걸 손질해 민주당案으로 발표
추미애, 돌연 靑회담 제안에 당황
'유연' 우상호 등과 합의해 12월9일 표결일 결정


'최순실 게이트'가 세상에 알려진 후 지난해 10월 29일 청계광장에서 첫 주말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말마다 이어졌던 대규모 촛불집회는 탄핵의 시작점이었다. 이후 정치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그해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레이더P는 지난해 탄핵정국 당시 각 당의 지도부를 만나 막전막후를 들어봤다. 첫 번째 순서는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4일 "탄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가 금메달이고 박지원이 은메달이라고 본다"면서 "거기가 아니었으면 (탄핵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는 "당시 추미애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과격한 요구를 했었다"며 "상대적으로 저는 유연한 자세로 정치적 접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추 대표가 약속을 깨고 청와대 회담 제안, 김무성 전 대표와의 회동을 했고 제가 공개적으로 비난했다"면서 "저는 전열을 흩트려서 야당 사이의 불신을 가져와 만약 부결이 된다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소추의결서 역시 국민의당 주도로 작성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 전 대표는 "우리 당의 손금주·송기석 두 부장판사 출신 의원이 중심이 돼 작성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그걸 고쳐서 민주당안이라고 하면서 국민의당안에는 세월호가 없었다고 우리를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인터뷰 내용 중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이나 일방적 주장이 섞였을 수 있다. 그래도 가감 없이 기록했다. 탄핵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다.

이하 일문일답.



[200표를 모아라]

-탄핵으로 갔던 길을 복기하자면.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이 2016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됐고 언론에서 많은 보도를 하고 정치권에서 문제점이 부각됐다. 이후 지난해 11월 2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이렇게 3당이 탄핵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출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국정감사가 탄핵 전에 열렸다. 당시 제기한 의혹은.

▷특별히 어떤 당에서 어떤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보다 언론의 책임 있는 보도와 폭로 기사가 계기가 되어 우리는 언론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국회에서 언론과 국회와 국민이라는 삼박자가 같이 공격해 나갔다고 본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비박계가 돌아선 게 결정적 역할 아닌가.

▷당시 저는 국민의당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 대표회담도 하고 원내대표 회담도 함께할 수 있었다.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과격한 요구를 했었고 상대적으로 저는 유연한 자세로 정치적 접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가 정치적 판단을 잘해줬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훌륭한 분이기 때문에 원내대표들의 종합적인 판단이 함께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의석수 확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솔직히 얘기해서 광화문에서 촛불은 타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제도권 국회이기 때문에 과연 대통령의 탄핵이 바람직한가 하는 의구심이 의원들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 제가 우상호 원내대표에게 우리 당 40명 국회의원들을 분석해보니 아직 탄핵을 결심하지 못한 의원이 열댓분 되는 거 같다. 민주당은 어떠냐 했더니 몇 분이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한 20여 명이 민주당 국민의당 160석 중에서 어렵구나. 그러면 정의당을 합쳐도 170석인데 총 200석이 안 되니까 가결될 수 없다. 우리 내부에서 몇 석이 빠진다고 하면 민주당에서도 몇 석 빠진다고 했는데, 그래서 선거라고 하는 것은 20석 정도가 의심스럽다고 하면 '만사불여튼튼'이니 40석의 비박의원을 포섭해야 한다고 봤다.

-비박계의 동의를 어떻게 얻어냈나.

▷김무성 전 대표를 접촉해서 40명을 확보해 달라고 했다. 그래야 우리가 (탄핵이) 될 수 있다. 20명이 빠지니 튼튼하게 해야 했다. 그랬더니 김 전 대표가 40명이 됐다고 해서 제가 중간발표로 40명이 확보돼 있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제3차 담화를 발표했다. 국회에서 모든 것을 정해주면 그 일정대로 따르겠다고 하니까 사실 비박들은 어떻게 됐든 박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인연이 있으니 12월 7일까지 요구조건을 내세웠다. 기다려보겠다고 했지만 그러나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12월 2일 상정하게 돼 있었다. 그래서 제가 탄핵은 상정이 목표가 아니라 의결이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12월 2일 상정보다는 9일 상정이 좋다고 이렇게 제안했고 당시 3당 대표회담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청와대나 여당과 대화하지 말고 전열을 흩트리지 말고 3당이 비박과 (가야 한다). 두 당대표들은 비박과 인연이 없지 않나.



[2일이냐 5일이냐 9일이냐]

-중간에 어려움은 없었나.

▷그렇게 해야 된다라고 했는데 약속을 깨고 추미애 대표가 청와대 회담 제안, 김무성 전 대표와의 회동을 해서 단독 플레이를 하니까 저하고 좀 앙금이 생겼다. 그리고 심상정 전 대표는 아무래도 우리 편이 아니고 민주당 편이고. 그렇기 때문에 3당 대표 회담을 하면 제가 공개적으로 추 대표를 비난을 해버렸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그랬더니 추 대표가 그때 앙금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아주 곤란하게 됐다. 하지만 저는 전열을 흩트려서 야당 간 불신을 가져와 만약 부결이 된다고 한다면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은 광화문을 활보한다고 봤고 그건 절대 안 된다 하는 생각을 가졌다.

-최종 12월 9일안은 어떻게 결정된 것인가.

▷우리 당 내에서도 의원총회에서 12월 5일 절충안이 있었다. 우리 당에서는 유성엽, 이용호 두 의원이 40명 의원 중에서 12월 9일 안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안 되니까 제가 김관영 수석을 불러서 제안해 놓으라고 전달하고 왔다. 의원총회가 끝나고 제가 그때 겸직한 게 오늘을 가져오게 한 조그만 천우신조의 겸직이었다. 당 대표회담을 제안하면 이미 추미애·심상정 전 대표는 2일로 가자 하니까. 조금 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원내대표 회담을 제안했다. 오후 5시로 기억한다. 우상호·노회찬 전 원내대표에게 설명하니 9일로 합의하게 된 것이다.

-이후 문자폭탄을 받지 않았다. 9일 결정 탓에.

▷그때 우리 정치권에 조직적으로 문자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으로부터 수십만 개의 문자폭탄이 떨어져 전화기를 바꾸고 난리가 난 것이다. 당시 우리 당 의원들 문자가 다 공개돼서 소동이 나고 지금까지 문자폭탄의 효시는 그때다. 그렇게 해서 우리 탄핵 열차는 목포,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대전에서 만나 서울로 와서 국회에서 가결되니까 헌재로 출발했다.



[의결서 작성 우여곡절]

-탄핵소추의결서 작성 때 협의가 필요했을 텐데.

▷이때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탄핵소추의결서를 쓰는 것도 제가 그때 그랬다. 그것을 헌재가 인용될 수 있도록 쓰지, 복잡하게 써서 헌재 심의기간이 길어지고 사실 확인되고 부결될 수 있을 정도로 분풀이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당의 손금주·송기석 두 부장판사 출신과 헌법재판소에서 오랫동안 연구관을 하고 나온 변호사를 사서 그분들에게 쓰게 만들었다.

그래서 민주당과 같이했는데 민주당에서는 변호사 출신 금태섭 의원이 있었다. 근데 좋지는 않았다. 우리(국민의당안)는 본문과 부속서류에 세월호를 넣어 놨다. 그쪽 간사는 이춘석 의원이었고 우리 사람들과 회의해 우리 것을 가지고 훨씬 좋다고 해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에 보고했다. 우리 것이 좋으니까 자기들이 그걸 고쳐서 민주당안이라고 하면서 민주당에서 (오히려) 국민의당안에는 세월호가 없었다고 우리를 공격했다.

-세월호 관련 내용이 당초 민주당안에는 없었다는 건가.

▷그건(세월호 적시한 것은) 우리 부속서류에 있었지 자기들 것에는 없었다. 그걸 가지고 가서 먼저 발표를 했다. 이춘석 의원이 나하고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고 지난 총선 때 이춘석 의원하고 가까우니 국민의당 지역구 유세도 안 갔었다. 이 의원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있는 대로 해야지 지금 모든 것이 잘되는데 민주당이 그랬다고 국민의당을 왜 비난하냐고 했다. 위에서 시켜서 해서 할 수 없었다고 해서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춘석 의원이 그후로도 저에게 잘못됐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이미지 확대
▲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
-당시 권성동 법사위원장과도 조율 과정은.

▷권성동 당시 법사위원장이 그걸 읽어보고 검사 아니었나. 권 위원장이 당시 잘했다. 비박으로 나갔던 사람이니 그걸 보고 나한테 와서 국민의당안이 굉장히 잘 썼고 이걸로 해야지 민주당 것으로 해서는 심리가 오래 걸려서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써서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고 보나.

▷박 전 대통령이 만약 대국민 사과를 할 때 '내가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모든 책임은 나라고 했을 때 국민정서가 바뀔 수도 있었다고 본다. 또 우리가 탄핵했을 때 먼저 자진 사퇴를 했으면 여기까지 왔을까. 또 재판을 받으면서도 전직 대통령답게 국민과 역사를 상대로 해서 재판을 받아야지 검사를 상대로 재판을 받으면서 발가락 아프다고 절룩거리고 저렇게 추악한 모습을 보여가지고 박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 국정농단보다도 더 심한 대통령으로서 도덕적 상처를 준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본다.

그리고 탄핵을 한 것은 김무성이 금메달이고 박지원이 은메달이라고 본다. 거기가 아니었으면 (탄핵은) 없었다.

-국민께 전하고 싶은 말은.

▷촛불혁명의 산물로 태어난 대통령이기 때문에 과거의 그러한 구태를 과감히 탈피해서 오직 촛불 정신으로 나가면 새로운 대한민국 국가 대개혁은 이뤄진다. 지금 말하는 적폐청산도 반드시 이뤄져야 하고 새로운 역사를 정립해야 하지만 국민이 적폐청산 피로증이 오고 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몸통정리를 역사적 정리를 과감히 해서 국민이 바라는 남북관계, 민생경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윤범기 기자/김정범 기자/조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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