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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뿌리는 어디일까…김성수·신익희·DJ?

[레이더P] 신익희 생가에서 창당 62주년 기념식

  • 윤범기 기자
  • 입력 : 2017-09-19 10:47:41   수정 : 2017-09-20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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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18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창당 62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18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창당 62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18일 해공 신익희 선생의 생가를 찾아 제62주년 창당 기념식을 열었다. 신익희 생가는 지난해 9월 추미애 대표와 '(마포)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양당 통합을 발표한 장소다. 장면 정부까지 포함해 '4번째'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은 1955년 9월 해공 신익희 등의 주도로 창당된 '민주당'을 당의 공식적인 뿌리로 선언한 것. 그러나 55년 민주당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당이 아니었다. 조직과 사람에서 전신이 있었다.

레이더P는 민주당의 창당 기념일을 맞아 실제 광복 이후 생긴 민주당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 거슬러 올가가 본다.

◆인촌 김성수

'민주당의 뿌리'와 관련해 '인촌(仁村) 김성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891년 전북 고창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 일제시대 그는 각 분야에서 활약했다. 1915년 중앙학교 인수를 시작으로, 1919년에는 경성방직회사를 창립했다. 지주에서 교육자와 기업인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 1920년에는 동아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주를 겸했고, 1932년에는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지금의 고려대학교로 만들었다.

그가 광복 이후 송진우 등과 협력해 만든 정당이 바로 한국민주당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친일파 지주세력'의 정당으로 통하는 정당으로 민주당의 깊은 뿌리다. 민주당이 문재인 대표 시절 발간한 '민주당 60년사'에서 "한민당의 핵심 간부 중에는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행위자들이 다수 자리 잡고 있었다(16쪽)"는 언급이 나온다.

인촌 김성수는 지주세력을 대변했지만 이승만 정부에서 죽산 조봉암이 기획한 토지개혁을 '대세'라며 수용하도록 동료 지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또 이승만이 독재로 빠지자 2대 부통령직을 사임하고 반이승만 투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민주당을 창당할 때는 병상으로 문병 온 동료들에게 "죽산(조봉암) 같은 사람은 열 번 찾아가서라도 모셔와야 한다"며 혁신계까지 포함하는 야권 통합을 주장했다.

하지만 인촌은 한민당이 '민국당'을 거쳐 '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던 1955년 심근염으로 사망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한민당과 민국당의 당수를 지냈지만 '민주당'에 참여한 기간은 길지 않은 것. 또한 일제시대의 친일 행적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있어 민주당의 '뿌리'로 인정되기엔 논란이 많은 인물로 보인다.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를 펴낸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민주당 창당 시 실질적인 당의 오너는 인촌이었으며, 해공 신익희를 기리는 것은 좋지만 인촌의 역할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공 신익희

인촌 김성수의 뒤를 이어 '민주당'을 이끈 지도자가 바로 현재 민주당의 '창업자'로 거론되는 해공(海公) 신익희다. 189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외무차장·국무원비서장·법무총장·외무총장·문교부장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부의장이 되었다가 같은 해 8월 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의장으로 피선되었다. 지금도 국회 본회의장 앞의 로텐더홀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과 함께 초대 국회부의장이었던 신익희의 동상이 나란히 서있다.

신익희는 또한 한국 야당 사상 최초로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위원장이었다. 한민당의 뒤를 이은 민국당의 대표로 선출되어 이승만 정권에 맞선 것. 이어 1955년에는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 발전시키며 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공식적인 당명으로 '민주당'을 쓰기 시작했고, 민주당의 이름으로 낸 최초의 대선후보가 신익희였다.

해공 신익희는 1956년의 대통령 선거 슬로건으로도 유명하다. 야당 사상 최고의 정치슬로건으로 꼽히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표어로 내건 것. 이에 이승만의 자유당은 '갈아봤자 더못산다'로 맞섰지만, 슬로건 대결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둔다.

하지만 해공은 1956년 자유당의 이승만과 맞서 호남지방으로 유세하러 가던 도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해공 신익희의 서거를 아쉬워하는 내용을 담은 '비내리는 호남선'('남행열차'와 다른 곡)이란 추모곡이 만들어질 정도로 이승만 정권에 염증을 내던 국민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고, 당시 대선에서 수백만 표의 신익희 추모표가 나오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해공이나 인촌이 역사 속의 인물이라면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많은 당직자들이 기억하는 '민주당의 아버지'는 역시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당직자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김현 대변인이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도 '김대중 총재' 이끌던 평화민주당(평민당)에 당직자로 정치에 입문했다. 추미애 현 대표를 정치권으로 영입한 이도 김 전 대통령이었다.

김성수나 신익희가 광복 직후부터 1950년대 이승만 정부와 맞서 싸웠다면, DJ는 박정희 정권과 싸우면서 성장했다. 1997년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과거 장면 정부 이후 50년 만에 또 다시 민주당 정권을 창출했고,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 등 굵직한 업적도 남겼다.

DJ는 김영삼(YS) 대통령과의 야당사의 라이벌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YS가 1990년 군사정부와 협력해 '민자당'을 창당하면서 야당의 정통성은 오롯이 DJ에게 남게 되었다. YS의 상도동계는 현재 서청원 의원 같은 '친박계'나 김무성 의원과 같은 바른정당 의원 등이 산재해 남아있다.

지금의 민주당이 '뿌리'를 DJ나 인촌으로 내세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DJ를 당의 기원으로 내세우면 당의 역사가 30년 정도로 짧아지고 여전히 영남 지역에는 반DJ 정서가 남아있다는 문제도 있다. 또 인촌의 경우 친일과 연결된다. 따라서 '해공'이 당의 뿌리로 선택된 데는 이런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범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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