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한국서 유독 `얌전`했던 트럼프 방일과 대비, 그 이유는

[레이더P] ‘돈` 문제에 이미 실리 챙겨...이견 적은 안보에만 초점

기사입력 2017-11-08 17:22:47| 최종수정 2017-11-09 16:01:41
文대통령, 평택기지 마중·균형외교 설명 등
선제적 대응도 영향준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 국회 연설에서 일각의 예상과 달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같은 민감한 사항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 7일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간략히 언급하는 데 그쳤을 뿐 한미 FTA 폐기와 관련된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FTA 재협상에 대한 압박 수위가 한층 낮아진 모양새다. 이뿐만 아니라 방한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이 각종 국내외 이슈에 대한 발언 창구로 곧잘 활용하는 트위터마저 잠잠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동기자 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동기자 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또 방한 전 국내에서 논란이 됐던 이른바 '3NO'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이 "(북핵 문제에서) 한국을 우회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민감한 사안들을 직접 테이블 위로 꺼내놓지 않았을까. 특히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방한 직전 찾은 일본에서의 태도와 사뭇 달라 더욱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하와이를 떠나 일본으로 향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진주만을 기억하라. 애리조나함을 기억하라"는 압박성 글을 썼다. 이후 미·일 정상회담 등에서는 미국의 무기를 구매하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6일 일본 도쿄(東京) 모토아카사카(元赤坂) 영빈관에서 열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6일 일본 도쿄(東京) 모토아카사카(元赤坂) 영빈관에서 열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현재 미·일 무역은 공평하지도 열려 있지도 않다"고 지적한 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을 떠나기 직전인 7일 오전에도 "나의 일본 방문과 아베 신조 총리와의 우정은 위대한 우리나라에 많은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운을 뗀 뒤 "대량의 무기와 에너지 구매 주문이 있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지난해 미국의 대일 무역 적자는 약 690억달러(77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 방문 직전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멋진 젠틀맨"이라 지칭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8일에는 "한국에서 중대한 연설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만 했을 뿐 대통령과 한국을 압박하는 내용의 트윗은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한국이 이미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FTA 재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미국의 당초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실리를 챙긴 상황에서 굳이 이를 또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앞서 최첨단 군사정찰자산 획득·개발 협의도 즉시 개시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한미 FTA와 관련해서도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미국보다 신속하게 재협상 절차를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한국의 조치를 존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FTA 관련해서는 7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만나서 짤막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본부장을 향해 "당신, 한미 FTA 책임자죠(You are the FTA guy, right)? 일할 준비가 돼 있느냐(Are you ready for some work)"고 물었다. 김 본부장이 준비가 돼 있다는 취지로 답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손가락 제스처를 쓰며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미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장병 오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있다. [사진=이충우기자]이미지 확대
▲ 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미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장병 오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있다. [사진=이충우기자]
또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의 첫 방문지인 캠프 험프리스를 찾았을 때 이곳의 건설 비용 107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하는 기지건설 비용 92%를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브리핑까지 받았다. 이를 인지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경제적 요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6일 트럼프 대통령은 마린원에서 캠프 험프리스를 공중에서 시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공중 시찰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향후 일정도 모두 30분 이상 미뤄지게 됐다. 그만큼 캠프 험프리스를 인상적으로 봤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제적 대응도 트럼프 대통령을 침묵하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중 균형외교에 관한 질문에 "균형외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언급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미국을 향한 '일방적인 구애'를 펴고 있다는 혹평을 들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공식 일정을 골프 접대로 잡고 필드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옆에 태우고 직접 카트를 운전하는 등 지나친 환대로 무게중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7일 "미·일 관계는 이치대로라면 양측이 모두 필요한 관계여야 하지만, 현재는 일본이 미국을 향해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감사히 여기는 관계"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다양한 요구 사항을 꺼내놓아 논의를 분산시키기보다는 가장 시급한 문제인 '안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8일 국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경고를 하는 동시에 한국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 인권 수준, 한국전쟁 등 구체적인 사안까지 언급하며 한미동맹과 굳건한 안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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