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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쇼] 박정희 100주년, 전직 대통령들의 평가…극찬부터 혹평까지

[레이더P] 경제발전·근대화 높은 점수, 그러나 부패·독재 비판받아

기사입력 2017-11-14 16:11:21| 최종수정 2017-11-15 13:38:17
14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사곡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박 전 대통령 탄생 100돌 숭모제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14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사곡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박 전 대통령 탄생 100돌 숭모제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17년 11월 14일에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14일이 탄생 100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에선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기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집권 시기에는 '구국의 영웅'이자 '무서운 독재자'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았고, 서거 이후에는 민주화 이후 점차 인기가 되살아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함께 '박정희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과거 여론조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수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맏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요즘에는 다시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그의 후임자인 역대 대통령들은 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지금까지 출간된 역대 대통령들의 회고록과 관련 어록을 통해 알아본다. 극찬부터 혹평까지 7명 대통령들의 평가를 정리한다.



1. 박근혜 "아버지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영전에 헌화·분향하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영애시절모습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영전에 헌화·분향하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영애시절모습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딸인 만큼 부친에 대한 평가가 가장 극진하다. 18년간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1998년 정계에 입문할 때도 명분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IMF로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출마의 변을 밝힌 것. 하지만 부친에 대한 추모를 넘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비중을 높인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등 모습이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풍을 초래하기도 했다.



2. 전두환 "조국 근대화 과업 완성…내가 계승"

육군대장당시 전두환 장군 전역식[사진=대통령기록관]이미지 확대
▲ 육군대장당시 전두환 장군 전역식[사진=대통령기록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연은 5·16 군사정변 당시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김종필 등 육사 8기 졸업생과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자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관이던 전두환 대위는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서울 한복판에서 5·16 지지 행진을 주도했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의 눈에 띈 전두환 대위가 군내에서 사조직인 '하나회'를 구성해 육사 11기의 리더로 승승장구한 것. 하지만 12·12 쿠데타를 하며 선배 격인 5·16세력을 부정축재자 취급하는 등 '박정희 지우기'를 주도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며 자신이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과업을 완성시킨 비판적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3. 노태우 "침착하고 속이 꽉찬 사람"

노태우 대통령 민주정의당창당8주년기념식연설[사진=대통령기록관]이미지 확대
▲ 노태우 대통령 민주정의당창당8주년기념식연설[사진=대통령기록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한 직후인 1956년 소위 시절에 '박정희 사단장'을 만났다. 그는 박 사단장에 대해 "체구가 작은 편이면서도 침착하고 속이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유신 말기에는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청와대에 입성해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노태우 회고록에는 산림 가꾸기에 큰 역점을 뒀던 박 전 대통령이 그동안 잘 자라지 않던 나무들이 최근 급속히 성장하는 이유를 농림수산부 장관을 지낸 최각규 상공부 장관에게 물었으나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자 노 전 대통령이 "산성이던 한국 토양이 알칼리성으로 바뀌어 나무들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답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4. 김대중 "근대화 큰 업적…국민에게 자신감 불어넣어"

김대중대통령 크레디리요네증권사 주최 한국투자포럼 참석 연설 (1999)[사진=대통령기록관]이미지 확대
▲ 김대중대통령 크레디리요네증권사 주최 한국투자포럼 참석 연설 (1999)[사진=대통령기록관]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평생 박정희 대통령의 '정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했다. DJ는 생전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지지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가 6·25의 폐허에서 허덕일 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불러일으켰다"며 "근대화를 이룩한 것은 누가 뭐래도 큰 업적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임기 중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퇴임 이후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동교동을 방문했을 때도 "정치를 하면서 우리가 최대 정적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5. 이명박 "초기에 경제개발 효율적…부작용 남겨"

신년연설을 하고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대통령기록관]이미지 확대
▲ 신년연설을 하고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대통령기록관]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5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일화를 공개했다. 그가 박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79년 10월 현대건설 사장 시절이었다. 갑자기 경호실에서 불러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보니 봉투를 나눠주며 박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거기 적혀 있는 대로 말하라고 한 것.

내용은 "운동권 출신으로서 부마사태를 일으킨 학생들을 비난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라"는 취지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그의 앞차례에서 행사가 중단돼 난처한 자리를 모면했다는 일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을 생각하면 지금도 만감이 교차한다"며 "그의 독재에 항거하다 감옥에 갔지만 숨 가빴던 산업화 시대를 박정희 정부와 함께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을 시기별로 구분해 초기 경제개발에는 효율적이었으나 그로부터 파생된 부작용은 지금까지 국가 발전에 부작용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6. 노무현 "경제성장은 공…정수장학회는 장물"

신년특별연설을 하고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대통령기록관]이미지 확대
▲ 신년특별연설을 하고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대통령기록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접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한 자서전을 남기진 않았다. 하지만 퇴임 직전 방송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고 이 내용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필한 '운명이다'에 실려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경제가 성장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멀쩡한 부일장학회를 정권 측에 강제 헌납하게 만든 점은 잘못"이라며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노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니 사회에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7. 김영삼 "부정부패의 원조"

5.18광주민주화운동에따른특별담화발표를 하고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사진=대통령기록관]이미지 확대
▲ 5.18광주민주화운동에따른특별담화발표를 하고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사진=대통령기록관]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평가를 한 후임자다. 그는 2000년 1월 출간한 '김영삼 회고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부패의 원조'로 묘사했다.

또 "18년 동안 부정부패를 통해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조성했다"고 주장하고, 특히 1975년 5월 영수회담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오래할 생각 없다"며 눈물을 비치는 등 인정마저 악용해 사람을 농락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YS는 이 영수회담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잠시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지만 결국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한 외신 인터뷰를 이유로 국회에서 제명되는 등 끝까지 악연을 이어갔다.

[윤범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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