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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급 정치인에서 성폭행 피의자로 추락

[레이더P] 안희정 회견 취소…수사대응 불리 판단한 듯

  • 김기철, 이용건 기자
  • 입력 : 2018-03-08 17:24:07   수정 : 2018-03-08 18:3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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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서 성폭행 폭로와 관련해 8일 오후 충남도청에서 입장 발표를 하려 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충남도 관계자가 안희정 전 지시의 입장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여비서 성폭행 폭로와 관련해 8일 오후 충남도청에서 입장 발표를 하려 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충남도 관계자가 안희정 전 지시의 입장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 주십시오.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8일 예고했던 기자회견을 취소하며 이렇게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참여정부 첫해였던 2003년 12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법정에서 했던 그의 최후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안 전 지사는 법정 최후 진술에서 "죄를 엄하게 물어 달라.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겁게 엄벌해 달라. 과거에 악법은 어기는 것으로 저항했지만 이제는 그 법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제자리에서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며 "저를 무겁게 벌해 승리자라고 해도 법과 정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이고 증명하며 스스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안희정 전 지사가 대선 캠프를 대표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라며 "안희정은 나의 젊은 동업자"라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2003년 구속이 그의 첫 정치적 좌절이었지만 그후 역설적으로 재기의 발판이자 정치적 자산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젊은 동업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 10일 출소한 안 전 지사는 2006년 사면복권되면서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선거법 위반 전력 때문에 공천에서 배제돼 또다시 정치적 좌절을 맛본다.

한때 친노 세력 전체가 폐족의 위기를 겪었지만 2010년 충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해 박상돈 자유선진당 후보를 2.4%포인트 차이로 이기며 충남 최초 민주당 출신 도지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충남지사에 재선되면서 정치적 중량감을 높였고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문재인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안 전 지사는 '진보'임에도 불구하고 ‘오른쪽’으로의 확장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차기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꼽혔다. 그랬던 그가 하루아침에 성폭행 피의자로 추락했다.

유력한 대권 후보에서 성범죄 피의자로 추락했다는 측면에서 안 전 지사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닮았다. 2011년 IMF 총재였던 스트로스칸은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여자 청소부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스트로스칸은 2012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으로 재선을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보다 당선이 확실한 최강의 대선 후보로 꼽혔다.

사회당은 17년 만의 정권 탈환을 위해 스트로스칸이 출마만 결심하면 당내 경선 없이 그를 대선 후보로 추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대권의 꿈이 물거품 됐을 뿐 아니라 추가 성폭행 폭로가 이어지면서 상습적 성범죄자로 전락했다.

'아이돌급 정치인'에서 추락했다는 점에서 안 전 지사는 미국의 게리 하트 콜로라도주 상원의원과도 비슷하다. 1988년 미국 대통령 후보 민주당 경선에서 그는 '존 F 케네디의 재림'으로까지 불리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언론에 보도된 한 장의 사진으로 정치 인생을 접어야 했다. 유부남이었던 하트가 모델 도나 라이스와 요트 위에서 밀회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한편 안 전 지사가 8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일 피해자 김지은 씨의 최초 폭로에 따른 잠적 이후 사흘 만에 국민에게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았던 안 전 지사가 자취를 감추면서 의혹과 불신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회견 취소는 안 전 지사의 대선 싱크탱크인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여직원의 추가 성폭행 폭로가 있은 다음날 이뤄졌다. 추가 피해자 등장으로 또 다른 피해자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고 자신에 대한 여론이 더 악화한 것을 직감한 안 전 지사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피의자 안희정' 입장에서 제3, 제4의 폭로자 등장 가능성은 기자회견 발언 수위를 정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수행비서와 연구소 여직원의 폭로 내용만 감안한 섣부른 발언이 자칫 향후 수사 대응 과정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슬기 대전대 법학과 교수는 "추가 피해로 인해 상습범의 의미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재판에서 이 상습성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위협을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가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반전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은 여전하다. '정치인 안희정' 입장에서 안 전 지사는 이미 국민적 신뢰가 깨져버린 상황에서 사과가 대중의 가슴에 다가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충남 지역민과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지지자까지 등을 돌리면서 기자회견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증폭됐을 거란 진단이 나온다. 또 안 전 지사의 터전인 충남도청 직원과 고향 지역민의 곱지 않은 시선도 기자회견 취소 요인으로 지목된다. 도청 내부에선 성추문으로 도민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도청 공간을 기자회견 장소로 내줄 수 없다는 반발이 있었다.

[김기철 기자/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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