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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쇼] 北에 앞서 비핵화 과정을 걸었던 나라들

[레이더P] 이란·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남아공·리비아

  • 김정범 기자
  • 입력 : 2018-03-14 13:29:59   수정 : 2018-03-15 15: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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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비핵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될 것이냐를 놓고 전망이 분분한 가운데 비핵화를 앞서 달성했던 각 국가들의 모델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핵 보유와 견줄 만한 확실한 체제 보장 방안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했던 다른 국가들의 과정을 살펴본다.



1. 이란…핵개발 중단+제재 해제, 미이행 시 보복조치

이란식 핵 무장 해제는 '제재와 대화'가 병행된 방법이다. 2012년 7월 31일 버락 오바마의 행정명령 13622호와 뒤이어 의회에서 통과된 이란 위협감축법으로 인해 이란 경제는 결정타를 입었다. 미국은 이 두 조치를 통해 이란의 원유 수출입과 관련된 거래를 하는 개인 및 기업에 여행 금지, 미국 내 부동산 구입 금지, 자산 동결 등 전방위 제재를 가한 것이다.

이란 핵협상 타결 발표하는 각국 협상대표들[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이란 핵협상 타결 발표하는 각국 협상대표들[AP=연합뉴스]
이후 이란은 2015년 경제제재 해제를 대가로 핵개발을 중단하기로 한 핵협정을 체결했다. 이란식 핵협정은 그해 7월 주요 상임 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유럽연합(EU)의 리더 격인 독일 등 주요 6개국과 이란이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마련했다.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서방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포괄적 공동행동을 체결했다. 이란은 핵무기 프로그램 가동을 중단하는 대신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키로 한 것을 가리킨다. 이란의 군사시설을 비롯해 핵무기 개발이 의심되는 모든 시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합의됐다.

협상안을 이란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65일 안에 제재를 복원하기로 했다. 2010년 탄도미사일 관련 제재는 각각 5년과 8년간 유지하기로 했으나, 안보리 협의하에 이란이 외국산 무기를 도입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뒀다. 이란은 2015년 핵협상 타결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면서 한국을 비롯해 독일·프랑스 등과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2. 카자흐스탄…자발적 핵 포기→불가침 약속·대규모 투자

카자흐스탄은 옛 소련 붕괴 과정에서 1991년 12월 독립했는데 당시 1400여 개의 전략핵무기와 100여 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40대의 전략 핵폭격기 등을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2년 신생 독립국이었던 카자흐스탄은 국제사회에 핵무기를 완전하게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로부터 대규모 투자와 불가침을 약속받으면서 1995년까지 자국 내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로 넘겼고 핵시설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카자흐스탄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고 200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9% 이상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뤘다. 당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핵 폐기를 추진하자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했던 기준은 바로 자연보호와 후손들이었다. 핵실험으로 인해 독일 영토보다 더 큰 지역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포기하면서 투자를 받았고 이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핵무기를 포기하면서 투자를 받았고 이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연합뉴스]
카자흐스탄은 핵무기 대신 경제 발전을 선택함으로써 풍부한 에너지자원 개발을 위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유엔 주재 카자흐스탄 대사 카이라트 우마로프는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카자흐스탄은 자체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실험장도 폐쇄했으며, 스스로 비핵국가를 선포했지만 누구도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 우크라이나…핵 포기+안전보장·경제원조

세계 3위의 핵 강국이던 우크라이나는 핵무기가 배치된 소련의 공화국 중 하나였다.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당시 1800여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군부는 핵무장을 강력히 선호했다.

하지만 비핵화로 방향을 튼 우크라이나 정부는 핵을 포기하는 대신에 러시아와 미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안전보장을 희망했다. 이후 러시아, 미국, 영국과 1994년 1월에 3자 선언을 채택했다. 당시 체결한 것이 '부다페스트 각서'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보장과 경제원조를 약속받아 자발적인 비핵화에 나선 것이다. 당시 협약에서 우크라이나 보유 핵무기인 SS-19형 130기, SS-24형 46기, 핵탄두 1840개 전량을 3년 내 해체하기로 했다.

해체된 핵물질은 러시아로 이관하고, 러시아는 이에 대한 대가로 원자력 발전소용 핵 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비핵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침략을 받을 경우 안보리 차원의 지원 △미국과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는 한 우크라이나에 대해 핵 사용 금지 등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해체에 따르는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4. 남아공…주변국 여건 개선으로 자연스럽게 핵 포기

풍부한 우라늄 매장량을 가진 남아공은 1950년대부터 독자적 핵개발에 착수했다. 핵확산방지조약(NPT) 가입을 거부한 남아공은 이스라엘과의 핵협력을 통해 1970년 우라늄 농축 기술을 완성했고 1974년부터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 6기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하지만 남아공은 1985년부터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증가하고 주변 안보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하자 핵을 포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소련의 붕괴와 앙골라에서의 적대행위가 종식되면서 안보 위협이 감소했고 흑인정권 탄생을 위해 정치적 측면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있었다.

1991년 6월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NPT 가입 의사를 밝힘으로써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 달 뒤 남아공은 NPT에 가입했고 이어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해 핵관련 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을 받기 시작했다. 남아공은 1993년 핵포기를 선언하고 자진 해체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원조를 받아 6기의 핵무기를 보관했다.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1993년 3월24일 "아프리카 제국과 국제사회와의 새로운 관계인식에 근거하여 핵억지력을 포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5. 리비아…핵폐기 합의→민주화혁명→독재자 피살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사진=매경DB]이미지 확대
▲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사진=매경DB]
반면 카다피 정권의 리비아는 북한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모델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03년 리비아에서 축출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과 같은 최후를 맞을까봐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2003년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제재 완화를 대가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하고 국제조사단의 핵시설 사찰도 허용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11년 리비아에서는 민주화혁명이 발발했다. 카다피는 반군에 쫓기다가 같은 해 10월 살해됐다.

이 과정에서 나토는 카다피 정권 축출을 위한 반군의 작전을 지원했고 이후 유엔의 요청을 따르기 위해 취한 조처였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핵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체제 보장 약속을 받았지만 반정부 시위 등으로 인해 무참히 피살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자신들이 신뢰할 만한 핵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6. 이라크…대량살상무기 포기→미군 침략→독재자 사망

이라크 사례에 대한 북한의 우려도 있다. 2014년 김양건 당시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김양건 비서 말이 이라크의 후세인 예를 들면서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다 파기하면 경제제재도 해제하고 경제 지원도 하겠다고 했는데 그걸 믿고 대량살상무기를 다 파기하니까 미군이 침략을 했고 후세인은 결국 땅굴에서 총살당했지 않느냐"라며 "만약 북한이 비핵화를 했을 때는 미국이 그렇게 나온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2005년 미국은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건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WMD) 수색을 포기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이라크의 경우 비록 핵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리비아와 유사한 사례로 북한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 살상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하고 사찰을 받아들였음에도 2003년 미국의 침략을 당했다고 북한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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