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김영란법 후폭풍...법저촉 안되는 ‘김영란 메뉴` 나올판

[레이더P] 애꿎은 피해자 발생 우려 속에 각계각층 대책마련 골몰

기사입력 2015-03-04 17:39:57| 최종수정 2015-03-06 09:20:24
국회에서 만든 법률에 한국 사회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이야기다. 이 법률이 3일 국회를 통과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사 홈페이지 등에는 다양한 비판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법 한건에 사회 전체가 들썩이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공직자의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법의 제정 과정과 내용, 향후 적용 과정에서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 법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는 법 자체가 현대국가에서 만들어졌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맹점이 많기 때문이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김영란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법의 형평성과 안정성에 저촉되고,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평등권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고 염려하고 있다. SNS 등에는 미국에서 만들었던 '금주법'을 거론하며 이 법이 가져올 폐해를 지적하는 글들도 많았다. “정치권이 미국민의 반독감정을 이용해 만들었던 금주법이 떠오른다”면서 “인간의 정서와 생활방식을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란법의 문제점 중에서도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점을 심각하다. 빈대를 잡는다고 초가삼간에 불을 질렀더지 옆집으로 옮겨붙는 격으로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 가능한 피해와 관련자들의 움직임을 정리했다.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이 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김영란법 국회 통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재훈 기자]이미지 확대
▲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이 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김영란법 국회 통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김재훈 기자]
◆ 농어민·중소기업·음식점 직격탄 될 듯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유통업체에 선물용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농어민,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같은 약자들도 타격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내수 침체로 힘들게 살고 있는데 법이 시행되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0만~60만원대 선물용 나전칠기 공예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대표는 "기업체나 기관에서 고객에게 선물하기 위해 공예품을 많이 구매하는데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내부 감사가 강화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구매가 줄어들 것으로 보여 큰 고민"이라고 염려했다. 그는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도 좋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 경제를 위축시키는 잘못된 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명절 선물세트 중 한우와 굴비, 자연송이를 중심으로 한 100만원대 제품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농어민들의 피해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백화점 관계자는 "고가 선물세트의 수요가 줄어들면 농어민들 피해는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선물 배송과 포장을 담당하는 중소 업체 대표도 "백화점과 마트에서 명절 선물량이 줄어들면 중간단계에 있는 우리 협력업체는 연쇄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법이 시행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고급음식점들도 김영란법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한끼 식사 가격이 3만원을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단품 메뉴를 주문하더라도 가볍게 술을 곁들이면 1인당 3만원 이하로 식사를 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을 하며 밥을 먹다 보면 3만원을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너무 잔그물을 쳐놓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메뉴와 가격을 조정해 패키지로 술과 함께 2만9900원에 판매하는 방식 등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가 되고 있다"면서도 "저녁 코스의 경우 3만원에 가격을 맞추기는 어렵고 기본 가격이 높은 중식당이나 일식당 등은 문을 닫게 생겼다"고 말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이 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
다.[영종도 = 이충우 기자]이미지 확대
▲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이 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 다.[영종도 = 이충우 기자]
◆ 기업 기부도 위축 전망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업들의 기부나 후원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영란법 제8조에 따르면 공직자 등 김영란법 대상자들은 직무 관련 여부는 물론이고, 기부나 후원, 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후원금 제도나 출판기념회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후원과 기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정유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거래처인 중소기업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경우, 명목금액에 해당하는 비용을 사회공헌팀에 내고 그 선물을 다시 받는 기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이 기부금을 모아 매년 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다. 따라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업들의 기부, 후원 활동에도 제동이 걸릴 경우 사회 약자층이 애꿎게 피해를 보는 사례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실제로 대부분 자체적으로 불법 로비에 대한 윤리규정을 강화한 반면 이를 사회공헌으로 돌리는 활동을 강화해 왔다. 삼성전자는 '공익신고' 제도를 통해 윤리경영을 강화하고 현대·기아차도 사내 징계위원회를 운영하며 엄격하게 사내 윤리헌장을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특정 업무와 상관없이 선물기부제도 등을 통해 대관 업무 대상자들과 네트워킹을 구축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부나 후원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위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불법 로비 활동 금지라는 당초 취지에 기부와 후원까지 포함됨으로써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계층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모두가 수사 대상' 가능성

수사기관의 포괄적 수사 가능성이다. 김영란법은 직무를 불문하고 1회당 100만원 또는 연 300만원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 직무와 관련이 있고 1회당 100만원 이하 금품을 받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금품을 얼마나 받았는지 여부는 수사기관이 수사를 한 뒤에 밝혀진다. 그러므로 사소한 선물이나 향응에도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이나 통신추적 등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100만원이라는 잣대로 형사처벌 여부가 결정 된다"면서 "일단 검찰은 단서를 포착하면 강제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도 "수사기관이 표적수사로 악용할 여지가 있다"면서 "이 법이 언론 길들이기 수단으로 쓰일 우려가 있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에는 언론의 취재를 제약하는 조항도 들어가 있다. '입찰, 경매, 개발, 시험, 특허, 군사, 과세 등에 관한 직무상 비밀을 법령을 위반해 누설하도록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언론인이 취재원인 공무원을 상대로 취재를 하고 보도한 직후 그 사항이 직무상 비밀로 밝혀질 경우, 언론인은 물론 공무원까지 모두 처벌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 종업원 잘못으로 회사도 처벌

김영란법에는 자주 위헌 논란에 휩싸이는 규정인 '양벌규정'도 들어 있다. 양벌규정이란 종업원이 업무에 관해 위법행위를 한 때에는 행위자는 물론 회사까지 같이 처벌하는 규정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법인 또는 단체의 대표자나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공직자나 그 배우자에게 금지된 금품 등을 제공, 혹은 제공 약속을 한 경우에는 행위자는 물론 그 법인·단체 또는 개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 또는 과태료를 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직원이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 위반 혐의로 1000만원 이하 혹은 20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받을 때마다 회사나 영업주에게도 같은 금액을 과태료로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양벌규정은 위헌 논란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양벌규정이 위헌 결정을 받는 주된 이유는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범죄를 이유로 처벌받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이 같은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단서조항을 둬 법인이 잘못이 없음을 입증하면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문제는 이로 인해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과태료 처분을 받을 때마다 기업도 과태료를 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안마다 직원에 대한 주의·감독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대관 업무 담당자는 "검찰에서 처벌 의지가 있으면 뭐든지 갖다 붙여 처벌하려 할 텐데 그 과정에서 기업활동 위축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특별취재팀 = 김정범 기자 / 윤진호 기자 /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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