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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신생정당 ‘오성운동` 돌풍이 한국정치에 던지는 시사점

[레이더P] `정치` 못하는 기성 정당 심판한 자발적 시민모임

기사입력 2016-06-22 15:16:18| 최종수정 2016-06-24 00:02:57
지긋지긋 좌우대립 벗어난 교통·환경 등 일상정치 강조
팬클럽에서 시작…이탈리아 지방선거서 19곳 승리


M5S 지지자들이 20일 로마에서 라지의 시장 당선에 환호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M5S 지지자들이 20일 로마에서 라지의 시장 당선에 환호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이탈리아 시사 풍자 코메디언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팬클럽'이 창단 11년 만에 원내 제1야당이 된데 이어 수도인 로마의 시장을 배출했다.

코메디언 베페그릴로가 당수를 맡은 정당 '오성운동' 소속의 비르지니아 라지 후보가 지난 21일 치뤄진 로마시장 결선 선거에서 당선됐다. 라지 당선자는 67.2%의 득표율로 집권당인 민주당의 로베르토 자케티 후보(32.8% 득표) 를 두 배 넘는 차이로 따돌렸다. 126곳의 지자체장을 뽑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성운동'은 결선까지 이탈리아 주요도시인 로마와 토리노를 포함한 19곳에서 승리했다.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으로 당선된 이탈리아 제1야당 오성운동(M5S)의 비르지니아 라지(37)가 20일(현지시간) 로마에서 기자회견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으로 당선된 이탈리아 제1야당 오성운동(M5S)의 비르지니아 라지(37)가 20일(현지시간) 로마에서 기자회견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번 선거는 기성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장이었다. 비르지니아 라지 당선자는 37살의 젊은 여성으로 로마제국 건립으로 로마가 탄생한지 2700년 만에 최초의 여성 로마시장이 됐다. 그가 2011년에 정치권에 입문한 뒤 불과 5년만에, '정치신인' 딱지를 채 떼기도 전에 이뤄낸 결과였다. 라지 당선자는 로마3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라디오 방송국 PD인 남편과의 사이에 7살 아들을 하나 뒀다.

외무장관 출신의 현직 피에로 파시노(66·민주당) 시장을 꺾고 토리노 시장에 당선된, 아펜디노가 20일 토리노 시청에서 연설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
▲ 외무장관 출신의 현직 피에로 파시노(66·민주당) 시장을 꺾고 토리노 시장에 당선된, 아펜디노가 20일 토리노 시청에서 연설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토리노 시장선거에서도 31살의 젊은 여성이 집권당의 현 시장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카아라 아펜디노 토리노시장 당선자는 이날 열린 결선투표에서 54.6%의 표로 피에로 파시노 현 시장을 (45.4% 득표) 눌렀다. 그녀는 5개월 난 딸의 엄마이자 2011년 토리노 시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정치 신인이었다. 중견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최고 사립대학으로 꼽히는 밀라나 보코니대를 졸업한 뒤 명문 축구팀 유벤투스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 오성운동...2005년 SNS 소모임으로 시작해 제1야당으로 발돋음

오성운동은 시사 풍자를 소재로 삼는 코메디언 베퍼 그릴로가 '좌-우파 이념에서 벗어난 생활정치'를 앞세우며 2009년 창당한 정당이다. 오성(五星)은 물, 교통, 개발, 인터넷 접근성, 환경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당의 5가지 주 관심사를 뜻한다. 그릴로는 1987년부터 TV와 라디오 출연을 금지당한 뒤 극장에서 정치풍자를 이어왔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비롯한 '구태 정치인'을 비판하며 인기를 얻었다.

오성운동의 시작은 소규모 SNS 모임이었다. 2005년 그릴로는 SNS 사이트인 미트업(MEETUP)에서 정치권 비판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40인을 조직해 "Friends of Beppe Grillo"라 명명했다. 당시 그는 "함께 즐기면서 우리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제안을 하는 공간"이라고 모임 취지를 설명했다.

이후 모임은 1200개 지역, 14만명이 참여하는 전국조직으로 확대됐고 ‘깨끗한 의회'를 강조하는 부패척결운동을 펼치면서 정치색을 띄기 시작했다. 2007년 ‘V-day' ('엿먹이는 날의 이탈리아어 줄임말) 집회는 오성운동 정당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33만6000여명이 "부패 정치인 출마 금지를 위한 법안을 제정하자"고 서명했다.

2009년 정식 창당 이후 오성운동은 매 선거마다 성장했다. 2012년 지방선거에서 처음 시장과 시의원을 배출한 뒤 2013년 2월 총선에서는 25%의 지지를 얻어 3당으로 부상했다.

◆ 시민운동의 정치화 가능성, SNS 정치의 가능성 보인 오성운동

새 정치세력인 '오성운동' 정당의 약진은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정치'를 하지 못하는 기성 정당을 심판한 결과다. 로마는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도로 곳곳에 패인 구멍도 보수하지 못하고 있다. 버스 등 공공이동수단 역시 적자에 시달리며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정치가 마비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 2014년 말 불거진 마피아와 시청 공무원의 결탁 의혹으로 기존 정치에 대한 시민의 환멸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오성운동의 약진을 "기존정치세력에 대한 일탈일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힘으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해 기성 정치를 심판한 것"이라며 "우리 국민들이 그런 역량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것도 기성정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와 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바람이 표로 나타난 결과"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오성운동의 약진은 자발적인 정치세력화의 플랫폼으로서 SNS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오성운동 창당에 앞선 2003년 이미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하워드 딘이 미트업(MEETUP)에서 '딘 토론모임'을 조직해 열풍을 일으켰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김광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페이스북을 통해 '날개' 모임을 구축하기도 했다.

오성운동이 이념투쟁에 함몰되지 않은 생활정치 구호가 호응을 얻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 포퓰리즘 공약 등은 한계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한 무리한 포퓰리즘 공약은 한계로 지적됐다. 오성운동은 선거를 치르면서 인터넷 무료화, 주 20시간 노동, 조건없는 기본소득 보장, 모든 초등학생에게 태블릿 PC 제공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국회 개혁과 관련해서도 국회 의원 3선 금지나 의원 정수 절반 축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현실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텔레그래프는 오성운동의 선전에 대해 "영국부터 스페인, 그리스, 오스트리아, 독일에 이르기까지 최근 유럽 전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든 소수 포퓰리즘 정당의 급속한 성장과 득세가 이탈리아에서도 반영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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