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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특강] 김병준 "제왕적 대통령 아닌 제왕적 국회가 문제"

[레이더P] 2강. 패권주의의 나라

기사입력 2017-11-14 10:02:07| 최종수정 2017-11-15 14:10:54
패권주의는 정책에 쓸 힘을 소진시켜
권력 쥘 생각에 민생은 구석으로 밀려
책임·의무만 큰 대통령, 권한만 큰 국회
대연정·협치, 유리한 자가 풀어나가야


"패권정치는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힘의 균형이 이뤄질 때는 한쪽이 이기려고 싸우고, 한쪽이 완전히 우세하면 그 패권에 얹혀서 다들 느슨해져요. 정책에 쓸 에너지가 완전 소실돼 버리는 겁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1강 '국가주의의 나라'에 이어 지난 9일 2강 '패권주의의 나라'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패권정치는 정책을 돌볼 힘을 싸움에 모조리 써버리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패권 다툼으로 멍든 한국 정치 곳곳을 다양한 사례와 쉬운 설명으로 진단했다. 김 교수는 '패권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싸움' 그 자체라기보다 '의제 왜곡'에 있다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패권이 의제를 왜곡한 첫 번째 사례로 '산업 구조조정'을 들었다.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 노동력이 아닌 에너지 비용이 싸고 소비시장이 가까운 쪽으로 공장을 옮기는 시대가 됐다. 이런 시대에 “어떤 제조업을 중점 육성하고 어떤 산업에 한계기업으로 둬야 하는지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과 지식인들은 누구도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사례로는 '노동 수요의 변화'를 짚었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저기술 비숙련 노동력 수요는 줄어들고, 고숙련 고기술 노동력 수요가 늘어난다. 이에 맞게 우리나라의 산업현장에서도 노동자에 대한 직무교육과 생산성 향상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용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왜 일까. 김 교수는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를 이유로 들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 중소기업에서 우수 인력을 키워 놓으면 결국 대기업으로 이직한다는 것. 이런 상황에선 중소기업이 근로자의 재교육에 투자하길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심각한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전혀 의제화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패권정치'로 인한 의제 왜곡 때문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단지 어떻게든 상대를 흠집내서 패권을 쥐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복잡한 정책 논쟁에 뛰어들 정치세력이나 지식인들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패권정치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양당제'와 '책임과 권한의 불일치'를 꼽았다. 특히 국회와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대통령은 헌법적 의무와 국민의 기대는 크지만 권한은 너무나 작고, 반대로 국회에 대한 의무와 기대는 작지만 권한만 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제왕적 대통령론'에 익숙한 일반적 인식과는 정반대 진단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대통령의 권한이 커 보이지만 실제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힘은 거의 없고 부정적인 처벌과 규제 권한만 크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패권정치의 대안으로 '대연정'을 제시했다는 점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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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국가가 아무것도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는데, 이게 국민에게 옳은 정치냐. 참여정부에서 꼭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몇 가지만 도와주면 나머지는 박근혜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이 원하는 대로 다 해도 좋다'며 너무나 진지하게 대연정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가 안 받겠다고 했어요. 노 전 대통령이 '이야기가 안 통하네요. 그만합시다'라며 일어서는데 정말 처절할 정도의 낙담과 의기소침해진 표정이었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 끝났다는 표정이었어요."

끝으로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안희정 충남지사가 꺼낸 '대연정'론이 특히 여권에서 집중적인 비판을 받은 데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당시 일각에선 '현재 여권 상황이 참여정부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데 왜 굳이 대연정을 하려 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유리하면 협치 안 하고 유리하지 않으면 협치하는 것은 우리 담론 수준이 높지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명사특강은 프리미엄 정치뉴스웹 레이더P(RayTheP.com)가 기획했고 이달 30일까지 매주 목요일에 진행된다. 강의 전체 내용은 레이더P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윤범기 기자·조선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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